2014년 9월 22일 월요일

복사꽃 피는 날들 , 꺼페이


복사꽃 피는 날들


책 소개
1980년대 마위안(馬原), 위화(余華), 쑤퉁(蘇童) 등과 함께 중국 문단에 대거 등장한 선봉(先鋒) 작가의 대표주자인 꺼페이(格非)가 십년 동안 준비해서 발표한 장편소설 『복사꽃 피는 날들』(원제는 인면도화(人面桃花))이 번역출간되었다. 꺼페이는 문학의 자주성과 순수성을 추구하면서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는 동시에 광기와 폭력 등 인간의 비이성적인 측면을 파격적인 형식과 독특한 언어로 다루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 작품은 20세기초 신해혁명을 전후로 여주인공 류슈미(陸秀米)의 일생을 통해 무릉도원에서 비롯된 중국의 유토피아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탐구한 소설로, 2004년 출간과 동시에 화제가 되었고 그해 장편소설 베스트쎌러 1위를 기록했다. 대중적인 관심뿐 아니라 치밀한 서사구조와 서정적인 묘사력 등에 대한 중국 평단의 격찬에 힘입어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휩쓸기도 한 작품이다.

인류 보편의 꿈, 유토피아 사상에 대한 섬세하고도 찬란한 기록

『복사꽃 피는 날들』은 4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마다 주된 인물과 그 주된 인물이 꿈꾸는 새로운 유토피아가 등장한다. 제1부 「육손이」는 푸지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집 안팎에서 광인 취급을 받는 슈미의 아버지 ‘루칸’의 가출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혁명을 통한 유토피아를 꿈꾸던 쟝지위안의 죽음으로 끝맺는다. 루씨 집에는 집안일을 보는 남자 하인 뺘오션, 어렸을 때부터 밥 먹듯이 집을 나갔던 하녀 추이롄, 추이롄을 견제하라고 데려온 또다른 하녀 시취에, 그리고 루씨 집 딸인 슈미, 그리고 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다. 루씨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메이쳥에서 왔다는 쟝지위안이 루씨가 쓰던 다락방을 차지한다. 어머니는 슈미나 시취에에게 쟝지위안을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하고, 지위안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한다. 집안식구들 모두 쟝지위안의 존재를 미심쩍어하지만 어머니만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이 군다. 그러던 어느날 루씨 나리의 행방을 안다는 쌀가게 주인이 나타나 모두들 챵져우로 떠나는데, 가기 싫다는 슈미는 억지로 끌려가고, 뜻밖에 쟝지위안이 함께 길을 나선다. 챵져우에 도착해서 며칠을 지내지만 루씨는 나타나지 않는다. 쟝지위안과 어느 승녀에게 변을 당하는 악몽을 꾼 뒤로 슈미는 지위안을 더욱 경계하지만 우연히 그와 밤길을 걷게 되고, 육손이를 찾고 있다는 지위안의 말에, 낮에 본 낚시하는 꼽추 이야기를 해주자 쟝지위안은 그길로 먼저 길을 떠난다. 푸지로 돌아온 슈미는 이제 떠나야 한다는 쟝지위안의 다락방으로 불려 올라간다. 지위안은 슈미에게 비단함을 건네주면서 한달 내로 자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이 죽은 것이고, 그뒤에 찾아오는 육손이에게 이 물건을 건네주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다. 반달쯤 후에 슈미가 열어본 그 비단함 속에는 금매미가 담겨 있었고, 비슷한 때에 장지위안의 시체가 강물을 타고 떠내려온다.

슈미의 아버지 루칸은 푸지를 도화원으로 만들고자 집집마다 복숭아나무를 심고 마을 전체에 긴 야회 회랑을 지어 마을 사람들이 햇볕이나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근대적 급진 혁명사상을 바탕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조고회(蜩蛄會) 활동을 하던 쟝지위안은 끝내 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제2부 「화쟈셔」는 슈미가 납치를 당해 도착한 화쟈셔의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다. 슈미는 죽은 장지위안이 남긴 일기를 보고 넋을 놓는다. 남몰래 자신을 훔쳐보고 깊은 연정을 품었던 지위안의 마음을 알고 느낄수록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한동안 넋을 놓고 정신을 잃고 살던 슈미는 어머니가 정해주는 대로 무심히 시집을 가기로 결심한다. 낯모르는 신랑을 따라 가마를 타고 시집으로 가던 슈미는 도중에 토비의 습격을 당하고 슈미만 남기고 일행은 모두 도망간다. 슈미를 납치한 토비 중 우두머리(넷째 나리)는 몇년 전 슈미네 집의 수리를 맡았던 이로 집에 그녀의 몸값을 요구하겠다고 하며 호수를 건너 화쟈셔로 납치해간다. 파계한 비구승 한류는 슈미에게 화쟈셔를 다스리는 여섯 두목의 사연과 그들의 토비 활동, 그들 사이의 권력관계 등에 대해 설명해준다. 첫째 나리인 왕꽌쳔의 지휘 아래 지상낙원을 세우려던 여섯 두목은 끝내 암투와 경쟁으로 서로를 치고 받아서 막내인 여섯째 나리가 결국 슈미와 혼례를 올리기로 한다. 혼례를 올리는 슈미에게 한류는 곱게 싼 금매미를 선물하고 돌아간다. 혼례날 밤 신방에 들어온 여섯째 나리는 이미 누군가에게 칼을 맞은 상태로 죽어간다. 최종적으로 슈미를 차지한 것은 열여덟살 먹은 마부로 그로 하여금 여섯 두목을 해치도록 조정한 배후의 인물이 바로 조고회의 우두머리 육손이였다. 왕꽌쳔 역시 슈미의 아버지 루칸이나, 쟝지위안과 형식은 달라도 유토피아를 꿈꾸던 이였으나 끝내 혁명에 실패하고 같은 무리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제3부에서는 아버지 루칸의 무릉도원과 쟝지위안의 혁명 유토피아, 그리고 왕꽌쳔의 화쟈셔를 모두 경험하고 탐색한 뒤에 푸지로 돌아온 주인공 슈미가 학당(학교)을 중심으로 마을에 유토피아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그리고 있다. 화쟈셔를 떠나 일본에 다녀왔다는 둥, 혁명당원이라는 둥, 갖가지 소문을 몰고 슈미가 꼬맹이 아들을 데리고 푸지로 돌아온다. 돌아온 슈미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가출한 아버지와 쟝지위안이 머물던 다락방으로 올라간 한동안 두문불출하다가 마을 안 사당을 학당으로 개조한 슈미는 청년들을 모아서 훈련을 시키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그냥 미치광이로 여긴다. 슈미는 전족을 금지시키고 토지개혁을 꾀하는 등 다양한 혁명사업을 벌인다. 꼬맹이를 잘 챙겨주던 빠오쳔의 아들 라오후는 어느날 밤길에서 우연히 마을에 들어온 솜 타는 이와, 그와 만나는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슈미네서 부엌일을 해주는 추이롄이었다. 추이롄은 라오후의 입을 막으려고 밤에 그를 유혹한다. 어머니가 죽은 뒤 슈미는 메이쳥 청방(청말의 비밀결사 단체)의 원로 롱칭탕에게 집안의 모든 땅을 팔기로 결정하고 한평생을 루씨 집안을 위해 일해온 빠오쳔은 배신감을 느끼고, 이제 루씨 집안은 더 이상 푸지의 지주 집안이 아니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슈미와 학당을 털러 관군이 몰려오고, 그 광경을 목격한 꼬맹이가 엄마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학당으로 뛰어간다. 학당에 들이닥친 관군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총을 쏴죽이는 가운데 꼬맹이도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결국 슈미는 롱칭탕의 아들이자 관군의 우두머리인 롱수비대장에 잡힌다. 롱수비대장은 다름아니라 추이롄과 사통한 솜 타는 이였다. 슈미는 관군에 잡혀 압송되고, 추이롄은 수비대장을 따라 마을을 떠난다. 뺘오쳔과 라오후, 시취에는 꼬맹이의 시신을 수습하여 잘 묻어주고, 빠오쳔과 라오후 부자는 푸지를 떠난다. 슈미가 건설하려던, 인정받지 못한 유토피아는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집안의 몰락과 어린 아들의 죽음, 그리고 슈미 자신의 체포로 끝을 맺는다.

제4부에서 다시 푸지로 돌아온 슈미는 스스로에게 금언의 형벌을 씌우며 소박하나마 푸지에서 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공동체 운동을 통해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에 성공한다. 모두가 죽거나 떠난 푸지의 루씨 집안에는 시취에만이 남아 가축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고 살아간다. 슈미는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푸지로 돌아온다. 슈미가 옥중에서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함께 학당을 꾸렸던 탄쓰의 핏줄이라는 소문이 돌지만 돌아온 슈미는 혼자 몸이다. 그녀는 말을 잃고(벙어리가 되어) 시취에의 보살핌을 받으며 뜰에 갖가지 화초를 키우면 시간을 보낸다. 애타게 찾던 육손이가 찾아와도 만나지 않고,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쓸쓸한 시간을 보내던 슈미는 자신의 집에 누군가 놓고 간 쌀자루를 풀어 가뭄과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어려움을 겪던 푸지 사람들에게 죽을 쑤어 나누어준다. 슈미는 사실 벙어리가 아니라 스스로 말을 금하는 벌을 주고 있었던 것으로, 시취에는 이를 곧 눈치챈다. 슈미는 시취에에게 화쟈셔에 가보고 싶다고 하고, 사흘 밤낮이 걸려 두 사람은 화쟈셔에 도착한다. 그러나 화쟈셔는 화재로 예전의 모습을 거의 잃었다. 그해 겨울 슈미는 아버지가 고이 간직하던 와부에 맺힌 살얼음에서 아버지가 누군가와 장기를 두는 환영을 보면서 조용히 죽어간다. 그뒤 메이쳥에 새로운 현장이 부임하는데 그는 감옥에서 슈미가 낳자마자 누군가의 손에 넘겨야 했던 그 아이다.





중국 현대문학이 마침내 도달한 새로운 경지


아버지, 연인인 쟝지위안, 그리고 왕꽌쳔이 이루고자 했던 유토피아 사상의 실현을 슈미라는 여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이 작품에서 슈미는 중국의 전통적인 유토피아 사상과 근대적 혁명사상의 중간지점에 있는 존재이다. 현실의 중국이 걸어온 길은 곧 슈미의 행적에 투영된 바가 많다. 슈미는 가출한 아버지의 행적을 탐색하고 쟝지위안의 일기를 통해 그의 사상을 배우고, 화쟈셔에서 왕꽌쳥의 무릉도원에 대한 이상을 경험하지만 결코 자발적인 의지를 지닌 존재는 못되었다. ‘학당’을 통해 푸지에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으나 실패로 돌아간 데에는 자발적인 혁명당원이 아니라 시대의 물결과 거대한 풍랑에 휩쓸린 그녀의 한계가 그대로 노출된 결과로 보인다.


슈미의 운명은 외침 속에 근대 시기를 겪은 중국의 운명과 동일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전통문화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채 근대화와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중국의 상황과 그에 대한 작가의 반성이 표현된 대목으로 읽힌다. 그리고 슈미가 감옥에서 낳은 아들, 딴꿍따가 푸지의 신임 현장으로 부임하는 작품의 결말은, 혁명기를 거쳐 새시대의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새롭게 싹틔울 수 있다는 일말의 암시인 셈이다.

중국의 보르헤스 계승자로 불린다는 작가 꺼페이는 초기 소설의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색채를 한층 사실적인 묘사로 대체하고 인간 본연의 정신적 빈곤과 타락을 표현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십년 동안의 연구와 집필 기간을 거쳐 탄생한 그의 대표작 『복사꽃 피는 날들』은 탄탄한 스토리와 속도감 느껴지는 필치로 흡인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현실과 환상, 현재와 과거, 역사적 사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서사구조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유토피아 사상, 혁명의식, 그리고 중국 근대사 등에 대한 녹록지 않은 암시와 상징이 깔려 있는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단숨에 읽어내려갈 만큼 이야기 자체로서의 재미도 쏠쏠하다. 또한 중국 고전소설적인 전통과 현대적인 형식을 동시에 갖추고 있으면서도 현란한 언어로 완성한 서정미는 중국 작가들이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인류의 꿈과 환멸이라는 보편적인 정신을 증명하기 위해 참신한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목차
제1부 육손이
제2부 화쟈셔
제3부 꼬맹이
제4부 말을 금하다
저자 소개

  • 꺼페이
    1964년 8월 쟝쑤성(江蘇省) 딴투현(丹徒縣)에서 태어났다. 화뚱(華東)사범대학 중문과에서 중국어문학을 전공했고 1998년 같은 학교 교수가 되었다. 2000년에 문학박사 학위를 획득하고 같은해 칭화(淸華)대학 중문과로 자리를 옮겼다. 꺼페이는 마위안(馬原), 위화(余華), 쑤퉁(蘇童)등과 함께 1980년대초 중국 문단에 등장하여 문학의 순수성, 자주성을 지향하며 문학과 역사,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돌아보는 작품을 발표해온 대표적 선봉(先鋒)작가로 평가받는다. 주요 저작으로는 『꺼페이 문집(格非文集)』 『욕망의 기치(慾望的旗幟)』 『사이런의 노랫소리(塞壬的歌聲)』 [...]

  • 김순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중어중문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중국 여성문학과 여성문화, 대만 문학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중국 문학작품을 국내에 번역 소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경성지련』 『첫 번째 향로』 『거울 속에 있는 듯』(공역) 등이 있다.

2014년 9월 21일 일요일

가만히 있어야 일이 더 잘되는 ‘5가지 상황’

가만히 있어야 일이 더 잘되는 ‘5가지 상황’
인사이트08/08/2014 08:08pm
ⓒMatteo Parrini/flickr

수많은 자기개발서는 더 많은 돈을 벌고, 승진하고, 성공을 하려면 더 열심히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디 책 뿐인가. 현대 사회는 우리가 무언가 성취하기 위해서는 더욱 분주히 그리고 열심히 일에 매진해야 한다고 '강요'하고 있다. 

성공신화를 신봉하는 이들에게 잠시 '가만히 있으라'고 말하는 것은 현상태를 유지하지도 못하는 '퇴보'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성공한 사업가인 제임스 앨투처(James Altucher)는 온라인 미디어 99u.com에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오히려 더 일이 잘 풀리는 5가지 방법(5 Ways to Do Nothing and Become More Productive)'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앨투처는 일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일을 하지 말아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조언한다.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정말로 어떤 경우에는 가만히 있는 방법이 최선책인 경우도 있기 때문.

그는 아래 5가지 상황에 직면하면 하던 일을 멈추고 잠시 모든 것을 내려놓는다고 말한다.

ⓒCraig Piersma/flickr

1. 화가 날 때는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Do nothing when you’re angry)

어떤 이들은 화를 내는 것이 감정에 솔직한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화가 났을 때 일을 하는 것은 절벽 아래로 곧바로 뛰어가는 것과 같다.

화가 난 상황에서는 우선 기다려야 한다. 감정이 진정되고 화가 가라앉을 때가지 말이다. 시간은 화를 없애주는 놀라운 치료약이다. 성공한 사람들의 특징은 화가 났을 때 우선은 모든 말과 행동과 판단을 멈추고 시간이 지나길 기다린다고 한다.

화는 당신 내부에서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는 외적인 표현인 것이다. 결국 화를 냈다는 것은 두려움을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다. 더욱이 화난 감정은 당신의 정상적인 판단을 흐리게 한다. 당연히 화났을 때는 그냥 멈춰라.

ⓒErica/flickr

2. 피해망상이나 편집증적인 증상이 나타나면 하던 일을 멈춰라(Do nothing when you’re paranoid)

앨투처는 원래 패러노이드(편집증)이라는 단어 대신 두려움(fear)를 적었다고 했다. 하지만 패러노이드로 변경한 이유는 이 단어가 더 적확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누구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피해망상이나 강박증 또는 편집증적인 면을 갖고 있다. 혹자는 "이 세상에서 언젠가 내가 없어진다는 사실이 너무 두렵고 외롭다"고 말하기도 한다. 

또 누군가는 막연한 미래에 집도 없이 외롭게 혼자서 늙어갈 것이 두렵다고도 말한다. 하지만 이런 고민과 걱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그런 심리상황을 받아들이고 피해망상에서 벗어나는 지혜가 필요하다. 

혹시 이런 기분에 빠져 있을 때라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앉아서 좀더 현실적인 눈으로 미래를 그려보는 게 좋다.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걱정들은 사실 99% 이상 실제로 일어나지 않을 것들이다.

ⓒSophia Louise/flickr

3. 불안할 때도 아무 일을 하지 말라(Do nothing when you’re anxious)

때로는 친구들에게 금요일 저녁 5시에 이런 전화를 받는다. "혹시 아직 사무실에 있어? 할 이야기가 있는데, 벌써 퇴근했지? 그럼 월요일에 이야기 하자"는 통화 말이다.

당연히 그런 전화를 받고 월요일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 특별한 일이 아니길 바라면서 차를 몰아서 친구에게 달려간다. 하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보면 별일이 아닌 경우가 많다.

어느 순간 불안감이 엄습할 때가 있다. 그런 상황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런 통화를 하기도 한다. 그나마 이는 양호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평소에 하지 않던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지금 뭔가에 쫓기고 불안한 상황이라면 그냥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잠시 멈춰보는 것을 권한다.

ⓒJérémY/flickr

4. 피곤할 때는 역시 아무 일도 하지 말라(Do nothing when you’re tired) 

제임스 앨투처는 자신의 실제 경험을 소개했다. 한번은 컴퓨터로 돈과 관련된 작업을 했는데 당시 피곤한 상황이었는데도 일을 억지로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루 종일 작업을 했는데도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고 계속 제자리를 맴돌았다고 회상했다. 잠이 부족했는데도 피곤한 몸을 견뎠던 것이다. 아내의 '명령'을 받고 하던 일을 접고 휴식을 취했고, 가벼운 컨디션으로 일을 끝냈다고 전했다.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던 일이 불과 몇시간 만에 끝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절대 컴퓨터와 싸워서 이길 생각을 하지 말라"고 조언한다. 

ⓒClarise Poh/flickr

5. 사람들에게 잘 보이고 싶을 때는 하던 일을 멈춰라(Do nothing when you want to be liked)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야 하기에 때로는 자기가 정말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하는 행동들이 많기 마련이다.

그런데 남을 배려하고 돕기 위해 하는 '선행'이라면 몰라도, 자기가 좋은 사람인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은 결과적으로 당신 삶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제임스는 지적했다.

거짓된 인간관계, 아첨과 위선 등으로 남들에게 환영받는(be liked) 사람이 된다면 당장은 기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25년 동안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그런 인간관계는 허무한 몽상일 뿐이고 남의 인생을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남에게 잘 보이고 싶을 때는 잠시 하던 일을 그만두고 그 자리에 앉아서 먼 산을 바라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는 끝으로 삶에서 '기다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지금 당신이 위에 소개한 5가지 상황에 처했다면 잠시 멈춰서길 권한다.

편안함의 배신 (1) : 편해질대로 편해진 세상에서 불편함은 늘어난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난 원인은?

편안함의 배신 (1) : 편해질대로 편해진 세상에서 불편함은 늘어난 역설적인 현상이 일어난 원인은?
작가
마크 쉔, 크리스틴 로버그
출판
위즈덤하우스
발매
2014.04.17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늘 우리와 함께하며 삶의 많은 분야에서 혁혁한 도움을 주는 스마트폰, 더 나아가 이제는 웨어러블 기기, 무인 자동차, 구글 글래스 같은 사물 인터넷 시대에 이르기 까지 오늘날 현대인들의 삶은 지난 10년 전보다 비교도 안될 만큼 편리함을 누리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급격한 기술 발달에도 불구하고, 과거보다 더 상황이 안 좋아진 게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보와 관련된 부분이다. 내가 원하는 정보들을 상당히 손쉽게 접할 수 있다는 건 분명 긍정적인 측면이지만, 문제는 한꺼번에 너무 많은 정보들이 TV, 인터넷, 스마트폰 등 다양한 스크린을 통해 돌아다님에 따라 역설적으로 올바른 의사 결정을 하기가 힘들어졌다는 점이다. 이 부분에 대해선 지난번 포스팅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투자의 재구성> 등을 통해 다루어 봤었다. 

그렇다면 남은 한 가지가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이자, 소개할 책인 <편안함의 배신, 마크쉔/ 크리스틴 로버그 지음, 위즈덤 하우스> 리뷰에서 다룰 내용이다. 이 책은 최면요법을 활용한 심리의학 치료사인 저자가 그 동안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과 심리적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편안함과 불편함이라는 느낌이 어떤 식으로 우리 삶을 해치고 있는 지 진단하고, 그 원인과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원래는 기존에 해왔던 대로 하나의 포스팅으로 책 리뷰를 마무리하는 식으로 진행하려고 헀지만, 생각해볼만 한 내용들도 많고 정리도 A4용지 2장 이내로 하기가 쉽지도 않아서, 이 책은 1부 2부로 나누어서 포스팅을 하려고 한다. 

...

 


습관적으로 때로는 강박적으로 메일이나 카카오톡을 확인 하는 행동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가 있을까?  폭식이나 섹스 중독, 약물 중독은 병이 아니라 원시적인 본능에서 비롯된 것일까? 불면증, 불안장애, 만성질환도 그렇다고 볼 수 있을까

이 책은 이 같은 질문에서 출발한다. 예상하겠지만, 질문에 대한 대답은 "그렇다"이다. 

기술의 혜택 덕분에 현대인들의 삶이 편안해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자명한 사실이다. 문제는 그와 동시에 불편함을 느끼는 정도와 횟수가 과거보다 더 증가하였다는 점이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불편함을 감내할 수 있는 내성 혹은 임계치가 현저하게 낮아지면서 조금만 불편한 상황이 와도 이를 견디고 감내하지 않고, 되려 그런 불편함을 피하기 위한 일련의 그릇된 행동으로 과식, 약물 남용, 불면증, 폐쇄 공포증 등 우리 삶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나쁜 습관들이 형성된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이야기이다.

 (정보 과잉의 문제점도 그렇고, 편안함이 가져다 주는 낮아진 불편함의 문제점도 그렇고 이쯤 되면 우리들은 과잉이 가져다 주는 역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어째서 편해질 대로 편해진 세상에서 더욱 더 불편함을 느끼고 나쁜 습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일까? 다름 아닌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아니 인류의 시초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생존본능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 생존 본능이라 함은 말 그대로 수렵, 채집생활을 할 때 외부 포식자들의 위협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이기에 오히려 좋은 본능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이해를 돕기 위해 머리 속 뇌가 담당하고 있는 기능에 대해 짚고 넘어가보고자 한다. 뇌에는 분석적, 연역적, 귀납적인 사고를 하여 일정 시간을 두고 판단을 내리는 대뇌와 두려움, 안전, 분노, 쾌락 등 원초적인 감정과 신체적인 반응을 즉각적으로 이끌어 내는 기능을 담당하는 변연계가 존재한다. 이 중 후자가 바로 생존본능이 거주하고 있는 영역으로서 인류가 파충류로부터 진화하던 시절에 형성된 영역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과 함께 공유하는 부분이기도 한데, 사실상 본성/본능이라 불리는 모든 반응이 바로 이 변연계에서부터 출발한다. (변연계는 다른 용어로 도마뱀의 뇌라고도 표현한다)

이러한 근본적인 욕구는 단세포 동물에서 복잡하고 정교한 생물종인 현대인으로 변해가는 동안 동일한 속도로 진화하지 못했다. 아니 어찌 보면 진화하지 못할 수 밖에 없는 듯하다. 과거 수만년 전에 비해 최근 100년 동안의 경제 및 기술 발전의 수준은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폭발적인 속도를 선사했으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원시적인 생존 본능은 현대인들로 하여금 복잡하고 미묘한 상황이 발생할 때 그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융통성 없고 고지식한 행동을 초래하게 만든다. 

우리가 불편을 느끼면 변연계는 그것을 안전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버리고, 결국 위험에서 달아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극단적인 반응들을 촉발하고 만다. 변연계는 태생적으로 불편과 두려움의 다양한 수준을 적절히 가려내는 데 그다지 신통치 못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원초적인 욕망에 휘둘리다 보면 좀 더 복잡해진 사회와 문명에서 요구되는 부분과 심각한 갈등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현대사회에서 쾌락과 두려움에 대한 반응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 본문 중 – “

이게 문제였다. 과거보다 오히려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있는데도, 이 생존본능이라는 놈은 조금만 불편하거나 두렵기만 해도 그 경중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걸 주인님의 생존에 위협하는 존재로 싸잡아 인식해 버린다. 그러다 보니 우리가 감내할 수 있는 불편함의 한계선이 점차적으로 낮아짐에 따라, 별 거 아닌 일에도 민감하고 불편하게 반응하고 때로는 지나친 스트레스와 나쁜 습관, 극단적으로는 정신 장애까지 겪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생존 본능은 어떠한 메카니즘을 통해서 위와 같은 끔찍한 (?) 일들을 벌이는지, 또 어떤 요인들이 그러한 메카니즘을 증폭시키는 지, 더 나아가 이런 문제점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지는데, 다음 번 포스팅에서는 해당 내용을 다뤄보고자 한다. 

동아시아 100권의 책 - 중국 쪽 선정도서

동아시아 출판인회의를 조직하여 "동아시아 100권의 책"을 선정한다는 말을 일전에 들었는데 29일에 선정 및 발표되었다.
동아시아 격변기 세계관 바꾼 ‘현대의 고전’ 한겨레
“거대한 독서공동체 복원 첫걸음” 한겨레
한·중·일 이어줄 ‘100권의 책’ 중앙일보
책에서 동아시아 문화 유전자 찾는다 중앙일보

내가 번역한 책도 후보에 올라와 있어 출간을 약간 미루고 있었는데 아쉽게도 최종선정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후보 명단에 올라와 있던 책들은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출판사별로 나눠먹기식이어서 성격이 명확히 보이지 않았다. 약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선정된 책들을 보니 나라별로 기준은 다르지만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런 색깔에 의하면 중국쪽에서 선정한 목록에 내 번역서가 포함되지 않는 게 너무 당연하게 보일 정도이다.

목록만 보면 한국과 일본은 선정기준이 거의 유사하고 출판인회의에서 내세운 취지에 잘 맞는 것 같다. 두 나라가 약간의 시간을 두고 비슷한 역사를 거쳤고 그것을 해결해 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일본이 "학술서"에 보다 치중한 반면 한국은 진보적 시각이 두드러진 책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때문에 조선일보에서 아니나다를까 선정 기준이 뭐냐고 하나마나한 말을 하면서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고([편집자 레터] '한국 대표하는 책' 기준은), 한국일보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자국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저술한 학술서와 고급 교양서"임에 반해 한국은 "정치ㆍ사회적으로 진보적 관점에서 저술된 책"이 눈에 띄어 "공공기관인 한국문학번역원의 지원을 받아 한국을 대표하는 책으로 해외에 소개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다.(동아시아 독서 공동체, 끊겼던 맥 다시 잇는다) 한국쪽 선정도서에 대한 견해는 비슷한데, 일본쪽 선정도서에 대해서는 한국일보와 한겨레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어차피 한국사람들에겐 생소한 분야라 신문에서 그렇다면 그런 줄 알 테니까.)

이에 반해 중국쪽은 명확하게 중국 "학술"에 방점이 찍혀 있다. 그야말로 "현대의 고전"이라고 할 만한 책이다. 뭐, 그다지 정치적으로 위험하지 않은, 그런 거. 처음 추천후보에 각종 사전류가 대거 포함된 것을 생각해 보면 많이 나아진 거긴 하다. 사전이 정치적으로 가장 안전하긴 할 테지만, 무려 "동아시아 100권의 책"으로 서로 돌려보자는 취지에는? 그걸 어찌 번역해? 후후.
암튼 정리된 최종선정 목록에는 인민공화국 건립 이후의 역사에 관련된 책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중국쪽 매체에서는 거의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한국어로 엉성하게 번역된 책 제목이 아니라 좀 더 정확한 목록을 살펴보려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검색되어 나오는 건 중앙일보 등이 올초에 제공한 기사의 중문판이 대부분이었다. 혹시 중국 쪽은 발만 슬쩍 담근 형국??


이 중 한국어로 이미 번역된 책은 대략 다음과 같다.

중국
1. 시론, 주광잠(주광첸), 동문선
4. 중국철학약사, 풍우란(펑유란) ; (간명한)중국철학사 / 펑유란 지음 ; 정인재 옮김 형설, 2007
7. 한어사고, 왕리 ; 중국어 어법 발전사 / 王力 著 ; 박덕준 ... [등]역 사람과책, 1997
10. 미의 역정, 이택후(리쩌허우), 동문선

18. 담예록, 전종서(첸중수) ; 하나마나한 번역으로 <중국어문학> 학회지에 완역(미출간).
19. 향토중국, 비효통(페이샤오퉁) ; 중국사회의 기본구조 = Rural China / 費孝通 원저 ; 이경규 역一潮閣, 1995
20. 현대중국사상의 흥기, 왕후이 (출간예정)

대만
3. 중국예술의 정신, 서복관(쉬푸관) ; 중국예술정신 / 徐復觀 著 ; 權德周 ... [等譯] 東文選, 1990 /중국예술정신 / 徐復觀 著 ; 李鍵煥 譯 百選文化社, 2000
11. 만력 15년, 레이 황


각 신문들의 소개를 보면, 책 제목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사람 이름에서는 오류가 많다. 특히 중국식 병음은 많이 알려져 거의 오류가 없지만(중앙일보 표기는 엉망이다), 대만식 영문표기는 대부분의 신문에서 뒤죽박죽이다. 웨이드식 표기라는 걸 모르면 장광즈(張光直)를 창쾅츠(Chang, Kwang-chih)라고 읽을 수밖에 없다. 그나저나 심종문(선충원)을 셴콩웬(Shen Congwen)이라고 읽는 건 뭘까? 아마도 홍콩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

이번 선정에 한중일 각 26권, 대만이 15권, 홍콩 7권이다. 그러나 대만, 홍콩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는 책은 한두 권 뿐이고, 나머지는 모두 범중화권으로 묶일 수 있을 성질의 것들이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저자의 책을 번역한 것, 대륙에서 출간하지 않고 홍콩이나 대만에서 출간한 것도 포함되어 있다. 규모 면에서 한중일이 똑같은 분량으로 했을 때 나오는 불균형을 이런 식으로 메꾼 것으로 보인다만, 대만이나 홍콩 자신의 역사에서 나온 문제의식을 정련한 책들이 아쉽긴 하다. (이 목록만 보면 이들은 이미 "하나의 중국"이다.)

신문에 소개된 것처럼 차후에 번역이나 후속활동이 계속되겠지만, 이제껏 한중일 삼국이 서로 관심 가는 책들을 번역해서 보지 않은 것도 아니고(물론 중국에서의 한국책 번역 비율은 낮다만, 사업 이후에 갑자기 한국책을 많이 번역할 것 같지는 않다.). 이런 사업 자체로 문화공동체 운운하는 건 좀 과장일 듯하다. "같이" 뭘 할 건지에 대한 고민이 든 책은 없고 자국의 특성을 강조하는 책들로 다들 뽑았지 않은가. 게다가 중국 쪽은 동아시아에서 어떤 "공동체"로 묶이는 걸 그닥 바라지도 않지 않나?
http://redology.tistory.com/259

향토중국 : 중국 사회문화의 원형,페이샤오퉁

중국 사회문화의 원형 

양장본

페이샤오퉁 지음 | 장영석 옮김 | 비봉출판사 | 2011년 11월 20일 출간




<제4화> 『향토중국』(2011년 11월, 費孝通 지음, 비봉출판사) 

♨ 중국 사회를 알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 한 중국 사회학자는 도시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중국의 도시화율이 지난 2011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고 2030년에는 무려 70% 가까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생각엔 아직도 농촌을 봐야 한다. 중국의 자랑인 만리장성은 문명과 야만을 구분하는 상징이자 농업과 유목을 가르는 선이었다. 중국은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으로는 한없이 뻗어 나갔지만 그렇지 않은 장성 밖으로는 나가려 하지 않았다. 중국은 자고로 농업국가였고, 경자유전(耕者有田)은 모든 중국인의 꿈이었다. 농촌은 바로 중국 문명의 원형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이 책은 바로 중국의 향촌사회를 다루고 있다. 1947년 처음 나왔지만 몇 해 전 동아시아 출판인들이 100권의 책을 선정할 때 당당히 한 자리를 차지한 역작이다. 중국 향촌사회의 인간 관계를 마치 돌 하나를 수면 위에 던졌을 때 형성되는 동심원(同心圓)의 파문(波紋)에 비유한 설명은 중국을 이해하려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주요 대목을 간추려 보았다. 

☞ “농작물을 돌보는 늙은 농민들은 마치 몸의 반(半)이 땅 속에 묻혀 있는 것과 같다” (21쪽) (촌평: 농업에 대한 중국 농민의 애정이 강렬하게 표현돼 있다) 

☞ “중국 농민들이 집촌(集村)을 이루어 거주하는 원인은 크게 다음과 같은 몇 가지라고 말할 수 있다. 첫째, 매 가족이 경작하는 토지의 면적이 작은 소농경영(小農經營)이다. 그래서 함께 거주하고, 주택과 농장의 거리가 멀지 않다. 둘째, 수리(水利)가 필요한 지역인 경우 상호 협력할 필요가 있다…셋째, 안전 문제이다. 사람이 많으면 쉽게 보위할 수 있다. 넷째, 토지를 평등하게 계승한다는 원칙 하에 형제는 조상의 유업을 계승하게 되고, 사람들은 한 지역에서 대대로 살게 되어 상당히 큰 촌락을 이루게 된다” (24쪽) (촌평: 중국 농민들이 왜 모여 사는지에 대한 한 해답이다) 

☞ “중국 농촌 공동체의 단위는 촌락(村落)이다. 세 집으로 이루어진 삼가촌(三家村)에서부터 몇 천 호로 이루어진 대촌락(大村落)까지 다 가능하다” (24쪽) 

☞ “향토사회에서는 법률이 발생하지 않는다…향촌사회에서는 낯익은 것에서 신뢰를 얻는다. 그 신뢰는 결코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 신뢰 그 자체가 가장 근거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규칙이기 때문이다” (26쪽) (촌평: 법치사회를 이룩하기 어려운 중국의 고민이 여기에 있다) 

☞ “’성명(貴姓大名)’은 우리가 서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사용하는 것이다. 친숙한 사람들은 그것이 필요 없다” (34쪽) 

☞ “극단적인 향토사회는 노자(老子)가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사회, 즉 ‘닭 우는 소리와 개 짖는 소리가 서로 들리는 가까운 이웃에 살면서도 늙어 죽을 때까지 서로 왕래하지 않는(鷄犬相聞, 老死不相往來)’ 사회다. 개인은 고향을 잘 떠나지 않고 그가 거주하는 곳은 자기 부모의 고향이기도 한다. ‘여기서 태어나서 여기서 죽는(生於斯 死於斯)’ 결과 각 세대는 밀착되어 있다” (45쪽) 

☞ “각 세대의 생활이 동일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과 같은 사회에서는 역사(歷史) 역시 불필요한 것이고, 존재하는 것은 ‘전설(傳說)’뿐이다. 내력을 이야기할 때는 천지개벽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그 다음의 말은 ‘일상적’인 것 밖에 없지 않겠는가” (47쪽) 

☞ “도시 사회에는 이름난 사람(名人)이 있지만, 향토사회에서는 ‘사람은 이름이 나는 것을 두려워하고 돼지는 살이 찌는 것을 두려워한다(人?出名 猪?壯)’ ‘다른 사람보다 앞서지도 말고 뒤처지지도 말아야 하며(不爲人先 不爲人後) ‘사람 구실을 하기 위해서는 규칙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循規蹈矩)’” (47~48쪽) (촌평: 결코 앞으로 나서지 않으려 하는 중국인의 심리를 이해할 수 있다) 

☞ “중국 농민들의 가장 큰 병폐는 ‘자기만 생각하는 것(私)’이다…‘각자 자기 집 대문 앞의 눈만 치우고 남의 집 지붕 위의 서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各人自掃門前雪 莫管他人屋上霜)’는 속담을 생각하게 된다” (50쪽) 

☞ “서양의 사회는 우리가 논에서 볏단을 묶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몇 포기의 벼를 한 줌(把)으로 묶고, 몇 줌을 한 다발(?)로 묶고, 몇 다발을 한 단(?)으로 묶고, 몇 단을 한 짐(挑)으로 만든다…사회에서 이 단위는 바로 단체이다…그들은 항상 몇 사람으로 하나의 단체를 구성한다. 각 단체는 그 경계가 분명하다” (52쪽) 

☞ “중국의 상황은 한 단 한 단으로 명확하게 구분되는 벼 포기가 아니라 돌 하나가 수면에 던져졌을 때 생겨나는 동심원(同心圓)이 점차 밖으로 퍼져나가는 파문(波紋)과 같다. 각 개인은 모두 그가 사회에 영향을 미치면서 퍼져나가는 동심원의 중심이다…모든 네트워크는 각기 ‘자기(己)’를 중심으로 하고 있지만, 각 네트워크의 중심은 전부 다 다르다” (54~55쪽) (촌평: 저자 페이샤오퉁은 중국 향촌 사회의 인간관계를 동심원의 파문으로 비유한다. 돌 하나를 수면에 던졌을 때 생기는 동심원의 물결처럼, 나를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 나로부터 동심원의 파문이 멀어질수록 인간관계는 약화되는 것이다) 

☞”전통적 구조에서는 각 가족은 자신의 지위를 중심으로 주위를 하나의 테두리로 나누는데, 그 테두리가 곧 ‘이웃(街坊)’이다. 이웃 간에는 기쁜 일이 있으면 불러서 술을 대접하고, 아이를 낳으면 ‘붉은 물감을 들인 달걀(紅蛋)’을 보내고, 상(喪)이 나면 가서 염(殮)하는 것을 도와주고 관(棺)을 들어주는 등 생활상의 상부상조 기구이다. 그러나 이웃은 고정적인 단체가 아니라 하나의 범주이다. 이 범주의 크기는 중심의 세력 여하에 따라서 결정된다. 세력이 큰 가족의 이웃은 마을 전체로 확대되고, 가난한 가족의 이웃은 이웃하고 있는 두 세 집밖에 되지 않는다…세력이 변화하면, 나무가 넘어지면 원숭이가 흩어지듯이, 작은 집단으로 수축된다” (55~56쪽) (촌평: 2014 겨울올림픽이 열리는 소치로 날아가면서 시진핑이 내세운 이유가 바로 ‘이웃 집에 기쁜 일이 있으면 가서 축하하는 게 중국의 전통’이라는 것이었다. 시진핑의 이 같은 사고 역시 중국 향촌사회의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 “(서양사회에서는) 단체에 속한 사람은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있다. 자격이 취소되면 곧 그 단체를 떠나야 된다. 그것을 그들의 인심이 쌀쌀하거나 따뜻하다는 그런 인정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의 문제이다. 서양사회에서 쟁취하려는 것은 권리이지만, 중국 사회는 ‘관씨(關係)’를 맺으려 하거나 ‘교분(交分)’을 쌓으려고 애쓴다” (57쪽) 

☞ “내가 항상 느끼는 것은 ‘중국의 전통사회에서는 한 개인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가족을 희생시킬 수 있고, 가족을 위해서는 당을 희생시킬 수 있으며, 당을 위해서는 국가를 희생시킬 수 있고, 국가를 위해서는 천하를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63쪽) 

☞ “(중국 사회에서는) 보편적인 기준은 결코 작동하지 않고, 대상이 누구인지, 나 자신과 무슨 관계에 있는지를 분명히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어떤 기준을 꺼낼 것인지를 결정한다” (79쪽) 

☞ “서양의 가정이라는 단체에서는 부부가 주축을 이루는데, 부부가 공동으로 출산과 양육을 맡고, 이 단체에서 자녀는 조연 역할을 하며, 성장한 뒤에는 이 단체를 떠난다. 서양에서는 정치, 경제, 종교 등의 기능을 다른 단체가 담당하고 있으며, 가정의 본분은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것에 있지 않다. 부부가 주축으로 되고 양성(兩性)간의 애정은 응집의 역량이 된다…중국의 ‘가(家)’는 지속성을 갖는 ‘사업사회집단(事業社會集團)’인데, 그 주축은 부자간이고, 고부간의 관계는 횡적이 아니라 종적이다. 부부는 ‘보조축’이다…여자는 ‘삼종사덕(三從四德)’의 기준을 따라야 하며, 부모와 자식 간에는 책임과 복종을 중시해야 한다…’삼종(三從)’이란,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를 따르고(在家從父), 시집을 가서는 남편을 따르고(適人從夫), 남편이 죽으면 자식을 따른다(夫死從子)는 것을 말하고, ‘사덕(四德)’이란 여자의 말씨(婦言), 솜씨(婦功), 맵시(婦容), 마음씨(婦德)을 말한다…(중국에서) 가족은 동성(同性)을 위주로 하고 이성(異性)을 보조로 하는 ‘단일계통(單一系統)’의 조합이다” (87~97쪽) (촌평: 부부가 중심을 이루는 서양의 가정과 부자가 중심을 이루는 중국의 가정을 잘 비교해 설명하고 있다) 

☞ “지방의 질서를 책임지고 있는 ‘부모와 같은 관료(父母官)’가 예치 질서를 유지하는 가장 이상적인 수단은 ‘가르치는 것(敎化)’이지 ‘판결하는 것(折獄)’은 아니다” (112쪽) (촌평: 지금도 중국의 관리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은 이 부모관이라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인정(人情)을 빚지면 기회를 찾아서 빚진 것 이상의 ‘예(禮)’를 표시해야 한다. 그렇게 가중(加重)하는 것은 자신의 인정에 대해 상대방이 빚지도록 만들기 위한 것이다…친밀한 사회 집단에서는 서로 인정을 빚지지 않을 수 없고 또 ‘결산(算帳)’하는 것을 가장 두려워한다. 서로 인정을 빚지지 않으면 상호왕래가 불필요하기 때문에 ‘결산(決算)‘ 또는 ‘청산(淸算)’은 절교(絶交)의 말과 동일하다. (144쪽) (촌평: 중국인과의 거래에서 꼭 이해하고 실천해야 할 노하우다) 

☞ “향토사회는 전통사회이고, 전통은 곧 경험의 누적이며, 누적될 수 있었다는 것은 곧 자연의 선택을 거쳤다는 말이고, 각종 착오, 즉 생존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행위가 도태된 후에 남은 일련의 생활방식이란 것이다” (164쪽) (촌평: 중국의 향촌사회에서 왜 경험이 많은 노인이 존경을 받는지에 대한 적절한 설명이다) 

유상철 중국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