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3일 화요일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아직 아무도 탐험하지 않은 끝이 없는 숲이 있다. -어슐러 k. 르귄



바람의 열두방향_어슐러 k. 르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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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체적 행동이 정신적 행동을 가져오지 않는 한, 행동이 인간을 표현하지 않는 한, 나는 모험 이야기를 무척 지루해 한다. 액션이 많을 수록 그럴듯하지 않아 보이는 경우도 있다. 나는 인간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가에 흥미를 가진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숲이, 아직 아무도 탐험하지 않은 끝이 없는 숲이 있다. 우리 각자는 매일밤 홀로 그 숲에서 길을 잃어 버린다..'

어슐라 르귄 
"나는 인간의 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 가에 흥미를 가진다........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숲이, 아직 아무도 탐험하지 않은 끝이 없는 숲이 있다. 우리 각자는 매일밤 홀로 그 숲에서 길을 잃어 버린다..' "

혁명과 문학의 경계에 선 아나키스트 바진



혁명과 문학의 경계에 선 아나키스트 바진
박난영 지음
한울아카데미 / 2006-01-25 발행 / 변형신국판 / 양장 / 496면 / 17,000원
ISBN 89-460-3455-6 93820
분야 : 문학연구·언어학중국연구
현대 중국의 대표적 작가 바진의 작품과 사상

이 책은 20세기 중국의 대표적 지성으로 손꼽히는 바진의 문학과 사상에 관한 연구서다.
현대중국의 대표적 작가로 손꼽히는 바진이 중국 내에서 상이한 평가를 받고 있는 내면에는 두 가지 모순적인 측면이 맞물려 있다.

탁월한 작가로서 바진을 긍정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 측면과 중국의 공식적 문예관이라 할 수 있는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및 이의 중국적 변용인 연안문예강화에 기반하여 볼 때 바진이 평생 유지해온 신념으로서의 아나키즘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평가해야만 하는 중국 연구가들이 지니는 당위적 측면의 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바진의 문학 세계를 보다 객관적으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체제의 당위성으로부터 자유로운 눈이 먼저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바진에 대한 다양한 평가의 기준은 무엇이고, 그러한 평가가 가능했던 근거는 무엇인가. 마르크스주의의 관점을 통해서 본 아나키즘이 아니라, 바진의 문학을 통해서 본 아나키즘은 무엇인가. 바진의 대표적 작품과 아나키즘의 상호 관계는 어떠한가. 이러한 의문들을 규명해 내기 위한 작업이 본서의 주요 내용을 이루고 있다.

1904년에서 2005년까지 봉건왕조에서 민주주의 국가로 또 사회주의 국가로의 역사적 변혁기에 신념과 문학을 무기 삼아 역사적 격랑을 헤쳐온 바진은 20세기 중국의 대표적 지성으로 손꼽힌다.

제국주의의 야만적 침략을 변호하는 약육강식의 사회 다윈주의에 대해 불만을 느꼈던 당대 지식인들과 마찬가지로 바진은 인류발전의 기본 원리는 상호부조(相互扶助)라는 아나키즘의 이상에 경도된다. 15세에 크로포트킨의 「청년에게 고함」이란 글을 읽고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건립하는 것을 평생의 꿈으로 삼게 된 바진은 혁명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고자 했으나 그는 혁명가라기보다는 문인이었다.

자전적 소설이자 대표작이라 불리는 『가』의 발표로 작가의 명성을 얻은 뒤에도 바진은 작가로서가 아니라 아나키스트 혁명가로 헌신하는 자신을 꿈꾸었다.
“사람들은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고 말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예술보다 더 영원한 것이 있다.

그것은 곧 신념이다. 이를 위해서라면 나는 예술을 기꺼이 버릴 수 있다.”라고 했듯이 바진의 삶은 자유, 평등, 박애의 정신에 의해 모든 사람들이 보다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의 건설을 위한 끊임없는 추구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의 좌절을 문학으로 승화시키는 과정을 통해 20세기 중국 지식인의 신념과 고뇌를 보여주는 바진의 삶과 문학은 개인의 자유로운 삶과 정의로운 사회를 꿈꾸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시사점을던져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아울러 중국현대문학 전공자 외에 일반 독자들도 한국과 중국 아나키스트들의 교류를 다룬 부분, 바진의 항전삼부작에 등장하는 한국인 아나키스트들의 삶의 모습을 통해 1930, 40년대 중국에서 항일활동을 한 우리 혁명가들의 삶의 편린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제1부 바진과 문학
제1장 바진의 문학 생애
제2장 문예관

제2부 바진의 아나키즘
1. 중국의 아나키즘 운동
2. 1920년대 바진의 아나키즘
3. 1930년대 바진의 아나키즘
4. 중일전쟁기 바진의 아나키즘

제3부 작품론: 바진의 3부작에 반영된 아나키즘
1. ‘혁명 3부작’과 ‘애정 3부작’에 반영된 아나키즘
2. 개성 해방의 추구: ‘격류 3부작’을 중심으로
3. 전쟁과 인간: ‘항전 3부작’을 중심으로

제4부 바진과 한국인
1. 1920년대 바진과 신채호의 아나키즘 비교
2. 항전 3부작 "불"과 한국인
3. 바진과 한국인 아나키스트


오늘의 초점인물 : <家>의 작가 바진 (巴金)
 중국정치연구실 | 2005·05·06 11:16 | HIT : 2,223 | VOTE : 456 |
  
 
 중국 현대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거인이며, ‘살아 있는 전설’인 바진 (巴金) 만큼 자신의 문학과 삶에 충실했던 작가를 찾기도 힘들다. 문학과 삶에 대한 巴金의 진지한 자세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쓰러지는 순간까지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고, 온갖 시련과 굴종에도 불구하고 순수 문학관을 고수하였다는 것이다.

-지난 2003년 11월 25일을 전후로 중국 내외에서는 바진 (巴金)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는 여러 가지 행사가 진행되었다.  李長春 정치국 상무위원은 후진타오 총서기와 당 중앙을 대표해서 바진이 입원 중인 상해 璜의원을 방문, 중국 문인에게 부여하는 최고 영예인 '인민작가'의 칭호를 전달하는 의식을 가지기도 하였다. 이를 계기로 중국 내외에서 바진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한 특집 보도가 줄을 이었고, 우리나라 언론도 간략하게나마 바진을 소개하는 글을 발표하였다. 
-사실 바진은 우리에게 그다지 낮 선 작가는 아니었다. 바진의 작품이 많이 소개된 것은 아니지만,  바진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장편소설 <家>가 번역 소개되었고,  또 그 소설의 주제도 우리에게 대단히 친숙한 것이란 점에서 바진은 우리에게 익숙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바진의 대표적인 <家>는  우리에게 이광수의 <흙>이나 <무정>을 연상시키기도 하였다. 
- 이미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바진은 루신 (魯迅) 등과 더불어 중국의 현대문학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긴 몇 안 되는 문학계의 거인이며, '살아 있는 전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신 만큼 존경을 받고 추앙을 받은 것은 아니지만,  중국 공산당의 관점에서는 존경은 커녕 오히려 경계와 의혹의 대상이 되고, 때로는 혹독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지만, 바진 만큼 자신의 문학과 삶에 충실했던 작가를 찾기도 힘들다. 문학과 삶에 대한 바진의 진지한 자세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가 쓰러지는 순간까지 나름대로 글쓰기를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며, 동시에 온갖 시련과 굴종에도 불구하고 그의 처녀작인 <滅亡>에서부터 시작된  그의 순수 문학관을 고수하였다는 것이다.
- 바진의 작품세계는 아래에서 간단히 소개하겠지만, 분량 면에서도 방대하고 복잡한 내용과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의 처녀작인 <滅亡 (1929)>에서부터 시작하여 그의 출세작인 장편 소설 <家>를 비롯하여 <春 (38)>과 <秋 (40)>로 이어지는 이른바 격류 3부작 등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그의 문학에 대한 순수한 열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1930년대 중국의 현대 문학계에는 우리 나라에서도 그러했듯이 이른바 프로 문학을 주장하는 좌익과 예술 문학을 주장하는 우익의 치열한 이데올로기적 논쟁에 휩쓸리게 되는데, 바진은 어느 쪽에도 가담하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문학에 충실하려고 하였다는 점에서 다른 작가들과 달랐다. 유명한 루신 (魯迅)이 문학을 통한 혁명과 사회적 진보를 주장하는 상황에서도 바진은 문학을 정치와 사상 투쟁의 도구로서 삼는 것을 거부하였고, 문학을 순수한 자아 발양을 위한 분출구로 삼으려고 하였으며,  시종일관 문학을 통해 약간은 허무주의적 색조를 띤 인도주의와 자유주의적 사상성을  견지하려고 하였다.
- 바로 이런 바진의 문학적 성향과 배경 때문에 종종 '무정부주의적 작가'라는 오해와 비판을 받기도 하였고, 문화대혁명시기에는  '부르조아적' 또는 '봉건주의적' 성향의 작가라는 혹독한 비판과 박해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바진의 진면목은 이념과 시류를 뛰어넘어 인간에 대한 그의 진실된 사랑과 믿음을 잃지 않고 견지하려고 했다는 점에 있으며,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오늘날 바진이 재평가되고 있다고 하겠다.
(1) 바진은 누구인가:
- 바진에 대한 간단한 약력 소개는 필자의 홈페이지 중국인물정보란-지식인편 (중국인물정보-지식인 Ba Jinl)에서도 찾아 볼 수 있는데, 그것을 여기에 전재하면 아래와 같다.
Ba Jin: 巴金 (1904- ): 2003년 11월 25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인민작가'로 추대된 현대중국 문학의 대표적 소설가 ; 중국 작가협회 주석이며 전국 정협 부주석; 무당파그러나 아나키스트 경향성 때문에 비판; 본명 李堯棠; 四川省 출신; 1921년 成都외국어전문학교 수료, 27년 불란서 유학, 귀국 후 상해를 거점으로 창작활동; 처녀작 〈滅亡〉(1929)으로 주목을 받고, <霧 (31년) - 雨 (33년) -電 (35년)>의 애정 3부작, 그리고 장편 소설 <家 (33년)>를 비롯하여 <春 (38)>과 <秋 (40)>로 이어지는 격류 3부작을 발표해 유명 작가로 확립, 건국 후 중국작가협회 부주석, 상해 문학 편집장 등을 역임하면서 한국전쟁 종군, 동구 및 일본 여행등을 했지만, 문화대혁명 당시 작가활동 중단되었다 76년에 복권, 78년부터 <수상록> 150편을 집필하면서 모택동 시대의 자신의 문학과 생활을 반성;  83년 이후 현재 중국작가협회 주석, 전국 정협 부주석 역임; 14권의 〈巴金 文集〉과 26권의 〈巴金 全集〉이 출간

(2) 바진의 생애와 작품세계 대한 인터넷 자료
- 인민일보 특집
 巴金百歲華誕
(http://www.people.com.cn/GB/wenhua/22226/30600/30604/index.html)

(3) 바진의 작품세계
-1928년 바진 (巴金)이란 필명을 사용하기 시작, 공개적으로 작품을 출판한 이후 약 70여년 동안 바진이 남긴 작품은 약 1500여만자에 달한다고 한다. 대표적인 작품을 중심으로 종류별로 분류하면 아래와 같다.

-巴金主要譯著略覽  (http://news.xinhuanet.com/ziliao/2003-11/12/content_1174002.htm)
長篇小說:《家》(1933年),《春》(1938年) 《秋》(1940年),                               《寒夜》(1947年)等;
                     
中篇小說:《滅亡》(1929年),《霧》(1931年),<雨》(1933),   
《萌芽》(1933年),《電》(1934年)等;
                     
短篇小說集:《復仇集》(1931年),《 落集》(1936年),《發的故事》(1936年),《小人小事》(1945年),《明珠與玉姬》(1957年)等;
散文集:《生之懺悔》(1936年),《廢園外》(1942年),《贊歌集》(1960年),《 火集》(1979年)等;
雜文集:《隨想錄》第一集,(1979年),《探索集》(1981年),《眞話集》(1982年),《病中集》(1984年),《無題集》(1986年),《再思集》(1995年).
譯著:克魯泡特金著《面包略取》(1927年),高爾基《草原故事》(1935年),普希金《叛逆者之歌》(1938年),德國斯托洛《遲開的薔薇》(1942年),俄國奈米洛夫《哭》(1948年),俄國屠格涅夫《蒲林和巴布林》(1949年),高爾基《回憶托爾斯泰》(1950年),高爾基《回憶屠格涅夫》(1950年),高爾基《回憶契訶夫》(1951年),高爾基 《回憶布羅克》(1952年),與夫人合譯《屠格涅夫短篇小說集》(1959年).

(4) 바진은 무정부주의자인가
- 巴金 이외에도 여러 가지 필명을 사용했다고 한다. 이를테면 巴比, 比金, 王文慧, 余一, 余三, 余五, 余七, 毆陽鏡蓉 등 20여개의 필명이 있지만, 대중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필명이 바진이고,  1928년 이후 주요 저작물들은 대부분 바진이란 필명으로 발표되었다.
-그런데 바진(巴金) 이란 필명 때문에 더욱 그가 무정부주의 작가라는 오해를 받았고, 그렇게 평가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본인은 부인하고 있지만, 바진이란 필명의 유래에 대한 소문, 즉 바진의 바 (巴)는 유명한 무정부주의자 바쿠닌( 巴枯寧)의 <바>에서 따온 것이고, 또한 진 (金)은 역시 유명한 러시아 무정부주의자  크로포토킨 (克魯泡特金)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라는 속설 때문에 바진을 무정부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로 오해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이런 속설을 부인하였다. 1979년에 바진은 프랑스 여행을 하면서 자신의 필명 바진이 바쿠닌이나 크로포토킨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1927년경 프랑스 유학시절에 알게 된 동료 유학생  '巴恩波'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고,  '金'자는 그저 우연히 생각한 것이라고 해명하였다.
- 그러나 이런 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기 작품이 특히 무정부주의적 성향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1920년대 그는 크로포트킨의 저작물을 중국에 번역 소개하기도 하였고, 무정부주의적 성향의 논설들을 여럿 발표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 1929년에 발표된 그의 처녀작 <滅亡>의 주인공인 杜大心의 행적도 당대의 무정부주의적 성향의 지식인을 연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인과 사랑을 이루지 못한 杜大心은 결국 증오와 미움, 죽음과 허무로 치달아 무정부주의적 테러와 개인적 영웅주의에 매몰되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좌파 지식인들은 杜大心=巴金의 '소자산계급의 관렴적 이상주의'를 비판하였다. 다시 말해  작품의 주인공 杜大心은 "소자산계급의 사랑과 정의감의 소유자였으며 그것을 바탕으로 낡은 사회의 죄악에 분노하고 반항하고 있지만,  그에게 계급투쟁은 없으며, 오직 심성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미음의 갈등만이 크게 작용할 뿐이며.... 혁명의 목적이나 가치를 소홀히 하고.....실질적 투쟁의 방법을 외면한 관렴적 이상주의자"라는 것이다.

(5) 바진의 대표작 <家>를 통해 본 그의 작품 세계
-1929년 바진은 처녀작 <멸망>을 발표한 이후  <사라진 태양 (死去的太陽): 1930>과 멸망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 新生: 1933>을 발표하였고, 1933년에는 이른바 [愛情 三部曲]이라고 알려진  <안개(霧 :1931)> <비(雨: 1932)> <번개(電:1933)>를 완결하였으며, 또한 1931년부터 써 왔던 <家>를 마침내 탈고하여 그의 또 다른 대표작으로 알려진 <春> (1930), <秋> (1940)의 삼부작을 激流三部曲이라 하였다.
- 여기서 바진은 일관되게 사회의 진보와 인간성의 발전을 가로막는 모든 인위적 제도, 인간의 사랑을 파괴하는 모든 구시대적 가치에 대한 저항하면서도 좌절하고 방황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바진의 대표작 <家>에서도 역시 구시대적 인습에 얽매인 봉건적 가정과 무능하고 부패한 지주나 관료 등의 권위주의에 의해 짓밟히고 억눌리어 마침내 희생되고 죽어 가는 젊은이들을 묘사하면서 낡은 제도에 대한 항거를 하고 있었다.  
-四川省 成都에 사는 까오 (高) 가족의 역동과 고뇌를 그린 장편 소설 <家>는 바진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데, 여기서 바진은 쥐에신 (覺新), 쥐에민 (覺民), 쥐에후에이 (覺慧) 형제들과 그들의 고종사촌누이 친 (琴) 등을 통해 봉건적 가정에서 어떻게 젊은이들이 좌절하고 방황하고 있는가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현실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반항할 힘이 없고, 우유부단한 쥐에신 (覺新)은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지 못하고 모든 문제를 절충주의로 해결하려고 하다, 결국 봉건주의 중압 밑에서 희생되고, 쥐에민 (覺民)은 봉건주의에 분연히 반항하면서도 그런 대로 절제심을 발휘하고, 성격도 냉정하여 살아 남지만, 쥐에후에이 (覺慧)는 진취적이면서도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끝내 집을 나가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기 위해 대도시도 떠나가는 쪽을 선택한다. 여기서 작가는 覺慧를 사랑하고 覺民에 동정하지만 覺新을 비판적으로 본다는 입장을 숨기지 않는다. 결국, 바진은 쥐에후에이 (覺慧)와 같이 봉건적  인습과 속박을 벗어 던지고 미래를 향해 떠날 것을 권고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광수의 <흙>이나 <무정>의 개몽주의와 이상주의를 연상시킨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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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공산당 혁명과 가부장 -딩링(丁玲, 1904~1986)

<밤> 공산당 혁명과 가부장

글에 관한 글 2013/02/28 10:58











<밤(夜)>은 중국의 여류 소설가인 딩링(丁玲, 1904~1986)의 작품이다. 수많은 중국 현대문학 작가들 사이에서 특히나 인물의 내면 심리를 훌륭하게 묘사하는 작가로 손꼽히는 그녀는, 1948년에 쓴 대표작 <태양이 상깐허를 비추고(太陽照在桑干河上)>로 중국인으로서는 최초로 스탈린상을 거머쥐기도했다. 딩링은 1932년 공산당에 가입해 활발하게 활동했고, 한때 국민당에 의해 3년여 간 수감되기도 하였다. 중국 당대 사회현실에 대한 열렬한 관심은 작품에서도 잘 드러난다. <태양이 상깐허를 비추고>는 중국 토지개혁운동을 소재로 한 작품이며, <밤> 역시 1940년대 중국 혁명 당시의 해방구를 배경으로 어느 공산당원의 이야기를 다룬다.

약 10페이지 분량의 짧은 소설 <밤>의 내용을 간추리자면 대략 이렇다. 주인공 허화밍(何華明)은 어느 작은 시골 공산당 마을에서 공산당 간부 일을 맡고 있는 남자다. 허화밍은 공산당 혁명 사업과 그에 관련된 회의 때문에 농사일은커녕 집에 매일 귀가하지도 못하는 처지인데, 집에 기르는 소가 새끼를 낳아야 해서 사나흘 만에 집으로 돌아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밤>은 바로 그 하룻밤동안에 벌어지는 주인공 허화밍의 의식 흐름에 초점을 맞춘 소설이다.

이 소설은 정확히 1940년대의 어느 농촌 해방구를 배경으로 한다. 중국 공산당의 혁명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던 시기다. 해방구란 당시 중국의 공산당이 점령하고 있던 마을을 말한다. 소설 속 마을은 아주 작은 시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민이 공산당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스무 가구 중에 무려 스물여덟명이 공산당원이다. 주인공 허화밍 역시 공산당의 혁명 운동에 가담하여 공산당 간부라는 중요한 직책으로 오르게 되었다. 한낱 보잘것없는 농사꾼이었던 그가 소위 잘나가는 사람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러나 허화밍은 공산당의 일원으로서는 외적으로는 개화된 듯한 행동을 보이지만, 내적으로는 정작 여자를 그저 물건처럼 취급하는 봉건적인 사고를 뿌리 뽑지 못하고 아내에게 막대한다는 점이 문제다. 그는 사회적으로 중요하고 선진적인 역할을 맡고 있을진대 실상은 꼭 그렇지도 않은 것이다. <밤>은 주인공 허화밍을 공산당 간부로서의 잘나가는 모습보다는 가장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작품 속에서는 허화밍의 낡은 의식이 다음과 같이 명확히 드러난다.


대문에 서서 앞산에 활짝 핀 복숭아꽃을 보고 있는 칭쯔는 성장이 아주 빨랐다. 분홍 끝으로 묶은 긴 까만 댕기머리를 한 채 까만 조끼 양쪽으로 꽃무늬 소매의 팔을 들고서 대문 문설주에 괴고 있었다. 열여섯 살 아가씨가 이렇게 키가 큰데 법정 혼인연령이 무슨 필요가 있나. 얼른 시집을 보낼 일이지.


속으로 생각했다. ‘이 늙은 괴물은 정말 ’물적 토대‘ 구실을 못해. 소도 새끼를 낳는데 저 여자는 뭐야. 완전히 알도 못 낳는 암탉이야.’


허화밍은 집으로 가는 길에 마을 지주의 딸 칭쯔라는 여자 아이를 보며, 몸이 어른 만큼 성장했으니 아버지가 알아서 딸을 시집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딸을 빨리 시집보내지 않고 두는 아버지를 욕한다. 정작 딸이 지금 결혼을 하고 싶은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고, 자녀의 결혼은 아버지가 알아서 결정할 일이라는 매우 가부장적이며 권위적인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허화밍은 자신보다 열 살이 많은 아내(그는 스무 살 때 서른 두 살의 아내 집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다)를 속으로 ‘늙은 괴물’, ‘물적 토대 구실을 못 한다’, ‘역겹다’ 와 같은 과한 표현을 할 정도로 무시하는 경향을 보인다. 과거에 자녀가 있었으나 모두 죽고 난 지금, 그와 아내는 다시 아이가 생기기를 바라지만 아내가 아이를 더 이상 낳을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 아내는 늙어버린 자신의 모습과 더불어 남편을 만족시켜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마음아파 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권의식이 강한 허화밍은 그러한 아내를 그저 고장 나서 못 쓰는 기계마냥 취급한다. 

한편, 소설 속 허화밍의 의식과 행동을 잘 살펴보면 평범한 농민이자 가장으로서의 모습과 능력 있는 공산당원으로서의 모습 사이에서 갈등하는 부분도 보인다. 그가 아끼는 회색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저녁밥을 기다리는 모습은 딱딱하고 보수적인 가장의 모습과는 대조된다. 그리고 그는 외양간에서 옆집 청년회 주임의 아내이자 공산당 간부인 허우꾸이잉이라는 여자를 만나는데, 둘 사이에는 묘한 기류가 흐르지만 그는 유혹을 뿌리치고 그녀를 뒤로한 채 과감히 집으로 돌아가 버린다. 허화밍은 공산당원으로서 비판받을 것을 우려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그가 진정 자신이 책임지고 있는 가정을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를 거부했던 것이다. "우리는 비판받게 될 거야" 라는 그의 대사는 그저 핑계일지도 모르겠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허화밍은 잠자리에 누워 내일이면 또 해야 할 혁명사업 회의를 생각하느라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는 잠이 든 아내의 눈물 한 방울과 자신 곁에서 코를 고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며 집안의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끼고, 서서히 잠이 든다. 남들이 깨어날 새벽 시간이 되어서야 말이다. 그는 정작 집안일을 하러 집에 왔으면서도 온통 혁명사업 생각만 하다가 하루를 보내버리고 말았다.


“소도 돌봐야 할 텐데......” 하지만 그는 소를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잠을 자야 했다. 그는 눈을 감았다. 잠을 이루려고 애를 썼지만 회의장이나 군중들만 어른거리고, “선전사업이 부족합니다. '농촌이 낙후되어있어요. 부녀 사업은 빵점입니다......” 같은 말만 들렸다. 그런 것들이 생각나자 마음이 다급해졌다. 어떻게 해야 농촌을 잘 만들 수 있을까? 이곳에는 혁명사업을 하는 사람이 없다. 그는 어떤가? 그는 아무것도 몰랐다. 공부를 한 적도 없다. 글자도 모른다. 아들조차도 없다. 하지만 지금 그는 향 지도위원이고, 내일 회의가 지닌 의의에 보고를 해야 했다......


<밤>에서 허화밍이라는 남성은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출세했고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은 인물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는 남권의식에 찌든 가장의 모습을 보이고, 또 어떻게 보면 이러한 상황 속에서 혼란을 느끼는 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그의 다중적인 모습들 중에서 가장 주목해야할 부분은 소설의 마지막에서처럼, 한 작은 가정을 꾸린 농민이었던 그가 갑자기 공산당의 간부로 일하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혼란스러움일 것이다. 이렇듯 <밤>이라는 제목은 허화밍이 농민이 아닌 공산당 간부로서의 삶에 혼란을 느끼는 모습을 뜻한다고도 할 수 있다. 실제로 공산당 혁명이 번졌던 당시 많은 농민들이 발 벗고 혁명에 가담했다. 소설 내용에도 나와있듯 당시 농민들은 배운 것이 많았던 것도 아니고 심지어 글자조차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공산당 혁명에 가담하게 되었다. 아마 당시 혁명에 가담했던 농민들의 대다수가 허화밍과 같은 처지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너도나도 혁명에 앞장서서 선진적인 사람으로 거듭나려하면서도, 보잘것없는 농민으로서의 자기 본래의 모습과 괴리감을 느껴 밤잠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지극히 봉건적인 의식을 버리지 못한 허화밍이 외부에서 성공하는 공산당 간부의 모습으로 변모할수록 허화밍 아내의 심적 고통은 더욱 심해진다. 이 부부는 마치 가정 파괴 직전까지 내몰린 것처럼 보인다. 허화밍은 혁명가로서의 의식과 농민으로서의 의식 사이에 갈등하고 혼란을 느끼면서도 아내에게는 결국 예전처럼 대하지 못한다. 혁명이라는 것이 허화밍을 점점 그러한 이중적인 인물로 바뀌게 만들었고 결국 그렇게 새로이 탄생한 인물의 태도는 아내에게 정신적 타격을 입히고야 만 것이다.

가족사소설과 근대성 -1930년대 한 중 가족사소설 비교 연구, 최계화

가족사소설과 근대성 1930년대 한 중 가족사소설 비교 연구 

내일을 여는 지식: 어문 49

최계화 지음 | 한국학술정보 | 2010년 07월 08일 출간

책소개

『가족사소설과 근대성』은 한국과 중국의 근현대 문학작품 가운데서 1930년대의 특수한 소설형태인 가족사소설을 비교 연구한 책이다.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예로부터 각종 교류가 빈번하였으며 비슷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가족사소설을 살펴보면서 한국문학이 지닌 가치를 재확인하고 이를 통해 동아시아 문학이 갖고 있는 특수성을 찾아낸다.

저자소개

저자 : 최계화

저자 최계화는
1966년 중국 길림성 연길시 출생
1988년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졸업
1991년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대학원(문학석사)
1999년까지 연변제1고등학교 조선어문 교사
2003년 전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대학원 졸업(문학박사)
2006년 청도대학교 외국어학원 한국어학과 교수

주요 논저
'가족사소설의 공간구조 연구'
'강경애 소설과 암흑'
'기대와 좌절의 역정'
'소질교육에서의 개성배양문제'
'읽기 능력과 정보선별' 등 다수

'한국어 실용문 쓰기'
'한국어 난제 해석' (공저)
'한국어 듣기 교정' (공동편찬)
'중학생 쾌속 글짓기 요령' (공동번역)
'소학생 쾌속 글짓기 요령' (공동번역)

목차

머리말

Ⅰ. 서론
1. 왜 한․중 가족사소설인가
2. 한․중 가족사소설을 어떻게 연구할 것인가
3. 근대 가족사소설 연구 어디까지 왔나

Ⅱ. 근대 가족사소설의 개념과 그 형성 배경
1. 가족, 가족주의와 가족사소설
2. 한․중 근대 가족사소설의 형성 배경

Ⅲ. 한․중 가족사소설의 서사 구현 양상
1. 인물 층위
가. 전근대적 인물군
나. 잉여인간군
다. 신세대 인물군
라. 가부장적 질서 속의 여성인물군
2. 구성 층위
가. 삼단적인 시간 구조
나. 이항 대립적인 공간구조
다. 플롯의 입체화와 일상성의 재현
3. 서술 층위
가. 3인칭 전지적 시점의 변용
나. 서술 태도와 서술 효과의 상관성

Ⅳ. 한․중 가족사소설과 근대성
1. 작가와 작품의 세계관 및 현실 대응 논리
가. 중립적 세계관과 근대적 합리주의 및 보수주의
나. 비극적 세계관과 풍자적 역설
다. 크로포트킨의 아나키즘과 개성 해방
2. 가족사소설과 격변기의 근대사회
가. 가족의 권력구조
나. 돈의 생산과 소비
다. 가족의 성 윤리

Ⅴ. 한․중 가족사소설의 비교문학사적 의의

Ⅵ. 결 론

참고문헌

출판사 서평

한국과 중국의 근현대 문학작품 가운데서 1930년대의 특수한 소설형태인 가족사소설을 비교 연구한 책이다. 한‧중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인접해 있고, 예로부터 각종 교류가 빈번하였으며 비슷한 문화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외래 제국주의의 침입과 자국 내부의 근대화 과정에 따른 변화와 모순에 직면하면서 양국의 직접적인 영향관계는 거의 단절되다시피 된다. 그런 상황에서도 1930년대에 두 나라에서는 동일한 장르인 근대 가족사소설이 나타나고 있다. 서로 연계가 단절된 상태에서 창작된 동일한 모티브의 작품과 그 서사방식에 대한 비교 연구는 양국 문학의 동질성과 변별성을 확인하고 그 공동의 법칙성을 찾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변화되어 온 사회 문화의 총체적 모습을 고찰하는 데도 큰 가치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문학이 지닌 가치를 재확인하고 그 위상을 높이게 될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동아시아 문학이 갖고 있는 특수성 혹은 법칙성을 찾아내는 작업에도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가족사소설은 가족소설의 하위 장르로서 ‘한 세대를 구성하는 가족의 이야기가 아닌 그 이상의 확대된 가족의 이야기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대상을 구현하고 동시대의 이념이나 가치 그리고 전통을 다양하게 수용하여 역사적으로 서술하는 소설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소설은 중국의 명나라 이래의 백화소설, 한국의 가문소설을 그 토대로 하면서 서구의 소설과 일본소설의 영향을 받아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현대문학에 나타난 가족사소설은 근대적인 리얼리즘소설로서 전통적인 가족소설과 구별되며 식민지 반봉건사회와 반식민지 반봉건사회의 동방나라들에서 생겨난 형태로서 서구의 그것과 일정하게 차이점을 갖고 있다. 한․중 가족사소설은 근대화 과정에 진입하는 격변기의 사회상을 반영하면서 당대의 가족사소설까지 포괄할 수 있는 장르로 확고히 자리를 굳혔다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 인물과 작품 소개

중국 현대문학의 대표 인물과 작품 소개

  • 작성자
  • 정은지 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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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노신(鲁迅,루쉰)(1881.9.25 ~ 1936.10.19)
사진출처 :

인물소개
자 위차이[豫才]. 루쉰은 대표적인 필명본명 저우수런(周樹人저장성(浙江省사오싱[紹興출생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조부의 하옥(下獄), 아버지의 병사(病死등 잇따른 불행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江南水師學堂)에 입학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고분학원[弘文學院]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仙臺醫學專門學校]에 입학하였으나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국민성 개조를 위한 문학을 지향하였다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域外소설집》을 공역(共譯)하는 한편망명 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신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탁본(金石拓本)의 수집고서(古書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광인일기(狂人日記)》를 발표하여 가족제도와 예교(禮敎)의 폐해를 폭로하였다이어 《공을기(孔乙己)》 《고향》《축복》 등의 단편 및 산문시집 《야초(野草)》를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특히 대표작 《아큐정전(Q正傳)》은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창작 외에도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北京]대학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의 교단에 섰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語絲社)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자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베이양군벌(北洋軍閥)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학생운동 3 ·18 사건으로 베이징을 탈출아모이대학[厦門大學] ·광둥 중산대학[廣東中山大學]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租界)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창조사(創造社) ·태양사(太陽社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프롤레타리아 문학을 흡수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좌익작가연맹이 성립되자 지도적 입장에 서서 활약하고,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또 이 해부터 판화(版畵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統一戰線)이 형성되었다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空轉)이 없는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그의 저작은 일찍이 《루쉰전집[魯迅全集](20, 1938), 《루쉰 30년집》(10, 1941)으로 출판되었고중국에서도 상세한 주석을 가한 또 다른 《루쉰전집》(10, 1956~1958)이 간행되었다.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 환등기 사건 노신이 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한 1904년 수업시간에 우연히 보게  된 환등기 장면에서 큰 충격을 받게 된다한 중국인이 러시아군의 첩자라는 죄목으로 붙잡혀서 처형을 당하는데그것을 많은 중국인이 얼빠진 모습으로 구경하는 장면이었다이 장면을 보고서 노신은 중국인이 병든 것은 몸이 아니라 정신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긴요하게 필요한 것은 몸의 질병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병든 정신을 개조하는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다이 일을 통해 노신은 심경에 큰 변화를 겪고진로를 의학에서 문학으로 바꾸게 된다.
 출처 : 김영구김진공(2007), <중국현대문학론>, 한국방통대출판부, pp. 58~59


대표 작품
<문예 세계문학선-15 아큐정전ㆍ광인일기>.루쉰 저문예출판사, 2004 09

① 광인일기(狂人日記)(1918) : 과거의 문언소설이나 백화소설과는 형식이나 창작기법 면에서 완전히 달랐고내용 또한 문학혁명’ 이라는 이름에 걸맞을 만큼 획기적으로 새로운 것이었다그는 형식 면에서 구어체의 문장과 서구 현대소설을 창작기법을 도입했고내용 면에서는 문학혁명의 핵심적인 주장인 ‘봉건주의 타파를 직설적으로 표현했다그는 이 소설을 통해중국인들이 최고의 가치관으로 여기는 전통윤리를 봉건예교(封建禮敎)’라고 비판했고중국의 전통적인 규범을 지키는 사회를 사람을 잡아먹는 사회라고 공격했다.
출처 : 김영구김진공(2007), <중국현대문학론>, 한국방통대출판부, pp. 63~64
② Q정전 : 1921년부터 베이징[北京]의 《천바오[晨報]》 부록판에 연재되었다가, 1923년에 제1단편집 《납함(呐喊)》에 수록되었다신해혁명(辛亥革命)을 전후한 농촌을 배경으로정확한 성명도 모르는 최하층의 날품팔이 농민인 'Q의 전기'라는 형식으로 쓴 소설이다혁명당원을 자처했으나 도둑으로 몰려서 싱겁게 총살되어 죽는 아Q의 운명을혁명 앞에서도 끄떡없는 지배력을 가지고 마을에 군림하는 지주(地主조가(趙家)와의 대조로 그려냄으로써 신해혁명의 쓰디쓴 좌절을 나타내고 있다.
모욕을 받아도 저항할 줄을 모르고 오히려 머리 속에서 '정신적 승리'로 탈바꿈시켜 버리는 아Q의 정신구조를 희화화(戱畵化)함으로써 철저히 파헤쳐당시 사람들이 자기가 바로 모델이 아닌가 하고 생각했을 정도로중국 구()사회의 병근(病根)을 적나라하게 제시하고 있다그후 이 작품에 대해서는 치엔싱추언[錢杏邨등의 심한 비판이 있었으나중국 현대문학의 출발점이 되었다는 점에는 아무런 이의가 없으며오늘날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② 모순(矛盾,마오뚠)(1896 - ?)

인물소개 : 본명은 침덕홍(沈德鸿)자는 안빙(雁冰)189674일 절강(浙江동향현(乡县)출생했다. 1927년 말 촉망 받는 신진작가로 떠올랐으며문학혁명 시기에 상해의 상무인서관(商務印書館)에서 문학잡지와 총서(叢書)의 편집을 주관하면서 진보적인 문학활동과 문화활동에 다방면으로 기여했다장개석과 대립했던 국민당 무한(武漢)정부에서 일했다는 이유로 1927년 수배를 당하였다그는 이후 숨어 살면서 소설 창작에 몰두하여, 1927~1928년에 걸쳐 《식3부작 <환멸>, <동요动摇>, <추구追求>를 발표했다그의 작품은 4.12정변을 전후한 당시 중국사회의 상황을 배경으로 하여 혁명의 물결 속에서 젊은 청년들이 겪는 좌절과 방황희망을 파노라마처럼 그려내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출처 : 김영구김진공(2007), <중국현대문학론>, 한국방통대출판부, p. 85
대표작품
(
写于19271928年的》,包括三个略带连续性的中篇:《》、《动摇》、《追求》,以广阔的场面宏大的气势真实迅速的反映了刚过去的大革命及大革命失败后的社会心理从在中国革命中具有特殊重要地位的小资产阶级知识分子心理历程的独特角度来反映大革命丝毫不回避历史教训显示了茅盾对中国革命及中国社会的认识把握以及清醒的现实主义批判精神写的是革命前夕的上海和革命高潮中的武女主人公章静情感脆弱而富于幻想她缺乏斗争的勇气意志软弱她对生活容易燃起希望也容易感到失望静讨厌上海的喧嚣和拜金主义化”,读书和爱情两方面都感到了幻灭为革命形势所鼓舞她到革命中心的武汉她换了三次工作但是每次都只增加些幻灭的悲哀”。静抱着这种脆弱的感情和幻想寻求个人心灵的寄托和安慰结果是一次又一次地感到幻灭这些都反映了革命浪潮冲击下某些知识分子共同的特点和命 《动摇写的是大革命时期武汉附近一个小县城的故事为革命联盟的国民党县党部负责人方罗兰在革命形势急剧变化的时候动摇妥协长了反革命的气焰他知道混入革命内部的胡国光的罪恶而不敢揭露和斗争他害怕人民群众的力量当革命遇到挫折的时候他不但束手无策而且为了个人的安全而决定离开革命国光是一个积年的老狐狸”,他利用种种卑污手段混进革命阵营伪装的革命面具掩盖自己的投机破坏行为关于革命者李克用墨不多但多少勾勒出了他的敏锐果断不屈不挠的革命精神当革命危机已经显露的时候李克以特派员的身份来到这个县城是他指出了这个县过去工作的病根是他冒着生命的危险去说服那些被胡国光所欺蒙和煽动了的群众是他当革命遭受了失败把革命的武装力量转移到南乡去准备继续战斗正是由于这些斗争生活的反映由于李克这个人物的出现,《动摇为三部曲中低沉气氛最少的一部   《的第三部追求》,如茅盾在焕之〉》中所图在于暴露一九二八年春初的知识分子的病态和迷惘”。其中所写的人物在革命高潮期间都曾有过一度的昂奋当革命处于低潮白色恐怖笼罩全国的时候们既不肯与反动派同流合污但又囿于阶级的局限认不清自己的正确道路虽各有所追求而最终都不免于失败张曼青的教育救国和王仲昭的闻救国的道路没有走通章秋柳只能在官能享受的自我麻醉中毁灭着自己也毁灭着别人另一人物史循则由怀疑颓废以致求死不得理想与事实不相应合”,这些人在追求败后得出的共同结论
출처 : http://baike.baidu.com/view/475287.htm
번역 : 1927, 1928년에 쓰여진 <> 3개의 연속성 있는 중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환멸>,<동요>,<추구>는 광활한 장면웅장한 기세로 사실적이고 재빠르게 이제 막 지나간 문화대혁명과 문화대혁명의 실패 후의 사회를 반영한다. <>은 중국 문화대혁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소자산계급의 심리 노선이라는 특이한 각도에서 문화대혁명에 대해 이야기하고역사적 교훈을 말하여모순이 중국 문화대혁명과 중국사회에 대한 인식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명백한 현실주의 비판 정신을 담고 있다. <환멸>은 문화대혁명 전날 밤의 상해와 문화대혁명이 고조된 무한에 대한 내용이다여주인공 장정()은 마음이 여리고 상상력이 풍부하다그녀는 투쟁에 대한 용기가 부족하고의지가 약하다그녀는 생활에 대한 희망이 쉽게 생겼다가또 금방 실망한다그녀는 상하이의 시끌벅적함과 황금만능주의를 싫어한다그녀는 공부와 사랑 두 방면에서 모두 환멸을 느낀다문화대혁명의 형세를 북돋우기 위해그녀는 문화대혁명의 중심인 무한으로 간다그녀는 직업을 3번 바꾸지만 매번 환멸에 대한 비애가 커질 뿐이었다이것들은 모두 문화대혁명의 물결 속에서 지식분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특징과 운명을 보여준다.
<동요>는 문화대혁명 시기에 무한 근처의 작은 마을에 대한 이야기이다문화대혁명연맹의 국민당 현당부 책임자인 방라란(罗兰)은 문화대혁명의 형세가 극변화될 때에 반문화대혁명을 조장한다그는 문화대혁명 내부의 호국광(国光)이 죄를 짓고 이를 숨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그는 대중들의 힘을 무서워한다문화대혁명이 실패를 맞았을 때 그는 아무런 방법이 없어자신을 지키기 위하여 문화대혁명을 떠나기로 결심한다호국광(国光)은 교활한 사람으로 여러가지 교활한 방법으로 문화대혁명의 진영에 숨어든다그는 문화대혁명의 가면을 쓰고 자신의 나쁜 행동을 감춘다혁명자인 이극(李克)은 신속한 결단력이 있는 사람으로문화대혁명에 대해서 일말의 굽힘도 없는 사람이다이미 문화대혁명의 위기가 드러났을 때에 이극은 특수 파견 요원의 신분으로 이 마을에 온다그는 이 마을의 과거 일에 대한 고질병을 나타내며생명의 위험을 무릎 쓰고 호국광에게 속아 선동된 사람들을 설득한다문화혁명이 실패했을 때그는 문화혁명의 전투력을 남향에서 계속 전쟁을 준비할 수 있게 바꾸었다.바로 이러한 전쟁 생활은 이극과 같은 사람을 만들어냈다. <동요> 3개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음침하지 않은 소설이다. <>의 제 3 <추구>는 모순이 <예환지를 읽다>에서 1928년도 봄지식분자들의 병태와 당혹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로 쓰여졌다고 말했다그가 만들어 낸 인물들은 문화대혁명이 달아오른 상황에서 한껏 고조되었지만 문화대혁명이 침체기에 들어서면서 백색공포가 전국을 뒤엎을 시절 그들은 반동파들과 나쁜 짓을 일삼았다하지만 국한의 단계에 구애 받아 자신의 갈 길을 정확하게 정하지 못해 결국 실패를 면하지 못한다장만청(张曼青)의 교육구국과 왕중소(王仲昭)의 신문구국의 길을 지나갈 수 없고장추류(장추류)는 관에서 스스로 마취해 자신뿐만 아니라다른 사람을 없앴다또 다른 인물인 사순(史循)은 의혹을 가졌지만 의기소침함 때문에 생명을 구하지 못한다. “이상과 실제는 다르다는 이러한 인물들이 추구에 실패했을 때에 맞게 되는 공통적인 결론이다.

  ③ 구추백(瞿秋白,취치우바이)(1899 – 1935)

인물소개 : 필명 쑹양[宋陽]. 아명 취솽[瞿雙]. 장쑤성[江蘇省창저우[常州출생독학으로 러시아어 ·프랑스어 ·영어를 익히고러시아 유명작가들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많이 번역하였다. 1920년에는 《베이징천바오[北京晨報]》의 모스크바 주재 기자로 있었다. 1922년 중국공산당에 입당하여 소련에서 개최된 극동민족대표대회 및 코민테른 제4차 세계대회에 참석하였다. 1923년 중국공산당 제3기 중앙위원 겸 선전부 부부장, 1924년 국공(國共)합작으로 중국국민당 후보 중앙집행위원, 1925년 중국공산당 제4기 중앙위원, 1926년 중국공산당 제5기 중앙위원 및 정치국 위원 등을 지냈다.
1927년 국공합작 결렬 후에는 코민테른의 지시로 중국공산당 중앙 8 ·7긴급회의를 개최하여 천두슈[陳獨秀] ‘우경 기회주의를 비판하고 중국공산당 총서기로 취임하였다그러나 1928년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중국공산당 제6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좌경 모험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아 중앙총서기직을 박탈당하고 모스크바로 소환되었다.
1930년에 중국으로 돌아와 중국공산당 코민테른 주재 대표코민테른 집행위원 등 당 지도부에서 활동하였으나, 1931 ‘조화주의자(調和主義者)’라는 비판을 받고 당의 핵심기구인 정치국에서 물러났다그 후 1935 2월 상하이[上海]로 도주(逃走)하다 국민당의 군대에 체포되어 그 해 6월에 처형되었다저서에 《아향기정(餓鄕紀程)(1921) 《적도심사(赤都心史)(1924) 《다여적화(多餘的話)》 등이 있다.
출처 : 네이버 백과사전
구추백의 문예대중화론  
구추백은 1932년부터 직접 문예대중화 문제를 주제로 한 여러편의 글을 발표하여 문예대중화에 대한 논의를 선도했다. 1932년에 발표한 <프로대중문예의 현실문제>, <대중문예의 문제등을 통해 그가 천명한 대중문화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언어와 문자의 문제에 가장 중점을 두었던 구추백은급진적인 언어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다그는 중국 현대문학에서 첫 번째 혁명적 시기는 청말(淸末)의 시계혁명(視界革命)과 소설계혁명(小說界革命)이 일어났던 시기이고두 번째 혁명적 시기는 오사운동 시기이며세 번째 혁명적 시기가 바로 당시라고 주장했다그는 문학혁명과 오사운동을 통해 유포된 백화문은 일부 지식계층에게 통용되는 새로운 문언체일 뿐진정으로 새로운 시대의 언어는 아니라고 역설했다기존의 이른바 오사식 백화문 대신에 노동자와 농민을 주축으로 한 무삽계급이 사용할 수 있는 현대적 보통화(普通話)를 정립 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그는 한자를 로마자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 이른바 신중국문자초안(新中國文字草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그는 신중국문자초안은 그가 이전에 러시아에 있을 때 러시아 언어학자와 함께 중국어의 로마자화 작업을 했던 경험을 토대로 만든 것이다.
 둘째형식과 체제의 문제에 관한 논의를 통해 구추백은 서구식의 문화형식과 체제를 탈피할 것을 주장했다그는 문학혁명 이후 발전해 온 중국현대문학은 기본적으로 서구문학의 형식과 체재에 입각한 것으로서본질상 지식인 계층을 넘어서 대중의 호응을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주장했다그러나 그는 새로운 문학형식과 체제가 어떤 것인지에 대해 명확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다만 대중이 즐길 수 있는 소박한 구두문학(口頭文學)을 창조해야 한다는 견해를 제시했을 뿐이다또한 그는 대중적인 문학형식을 모색하기 위해 대중이 애호하고 있는 전통적 민간문학 형식과 같은 구형식(舊形式)을 이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문학형식에 관한 그의 이러한 주장은 언어 문제와 더불어 그의 문예대중화론을 구성하는 주요 부분이었다이것은 이후 문예대중화론이 민족형식론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셋째작품내용과 창작방법의 문제를 거론하면서 구추백은 현실주의와 정치적 효용가치의 필요성을 역설했다당시의 중국현대문학은 개인적 감성이나 개성에 입각한 문학보다 사회의 보편적 현실을 묘사한 객관적인 문학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따라서 그는 향후의 문학창작은 반드시 현실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현실주의는 단순히 현실에 대한 묘사에 치중하는 것이 아니라노동자와 농민을 사회주의 혁명에 헌신할 수 있도록 서동하는 정치적 효용을 갖춘 것이다.
 넷째작가의 자기개조 문제에 관해서 구추백은 이후 사회주의 현실주의의 중요한 항목으로 자리잡게 되는 하향(下鄕)고 하방(下放)의 개념을 제기했다그는 당시 대부분의 작가가 자산ㄱ급 출신의 지식계층이어서이론적으로 문예대중화를 주장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노동자와 농민의 생활이나 생각을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다문예대중화를 실천하고 진정으로 대중적인 문예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동자와 농민 속으로 들어가서 그들의 생활을 직접 체험하고그들의 정서를 공감해야 한다고 하였다.
 출처 : 김영구김진공(2007), <중국현대문학론>, 한국방통대출판부, pp.114-115





④ 파금(巴金,바진)(1904 ~ 2005)

인물소개 : 파금은 1904년 사천(四川)의 봉건지주 집에서 태어났다본명은 이요당(李堯棠)이며필명인 파금은 그가 젊은 시절 심취했던 무정부주의의 대표적 인물인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의 이름 가운데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것이다파금은 1927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2년간 체류했고이 기간에 무정부주의에 빠져 그 방면 책을 탐독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소설창작을 시작했다따라서 파금의 초기 작품에는 무정부주의적인 색채가 강하다. 1928년 말에 귀국한 파금은 본격적으로 소설 창작에 전념하여중편인 <죽은태양(死去的太)>, <바다의 꿈(海的)>, <신생(新生)> 등을 연이어 발표했다. 1931년 여름부터 1933년 말 사이에는 이른바 애정 3부곡이라고 칭하는 <안개>,<()>, <번개()>를 완성했다이후 1931~1940년의 긴 기간 동안 창작한 연작 장편소설 <()>, <()>, <가을()>을 발표했다흔히 격류 3부작이라고 칭하는 이 작품은 파금의 대표작으로 꼽힌다파금은 100편이 넘는 작품을 창작한 다작(多作작가로 알려졌으며소설 이외에도 산문과 수필 등 많은 저작을 남겼다.
출처 : 김영구김진공(2007), <중국현대문학론>, 한국방통대출판부, pp.139-140

대표작품
<(,)>
<바진 장편소설 가 1,2권 세트바진 저박난영 옮김황소자리, 2006 10
격류 삼부곡’ 중 첫 권에 해당하는 『가』는 요동치던 중국의 1900년대 초새로운 사상의 세례를 받은 젊은이들이 봉건적 가부장제와 맞서 자신들의 자유를 쟁취하고 진정한 삶의 의미에 눈떠가는 과정을 그린 바진의 자전적 소설이다주인공 쥬에후이는 대지주인 자신의 가정 안에서 벌어지는 온갖 부조리한 일들을 고발하고그것으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누구의 고통과 희생도 담보하지 않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쥬에후이의 열망은 고인 물과도 같았던 가정에 파문을 일으킨다.





⑤ 심종문(沈從文천쫑원) (1902.12.28~1988.5.10)

인물소개 : 후난성[湖南省펑황현[鳳凰縣출생대대로 군인이었던 그의 집안은 먀오족[苗族]을 진정시켜 다스리기 위하여 그 곳에서 살아왔다. 13세 때 지방 군벌에 들어가 변경의 각지를 편력하였으며, 1922년 베이징[北京]에 나와 도서관에 근무하면서 소설을 써서 후스[胡適]에게 인정을 받았다.
뒤에 상하이[上海]에서 딩링[丁玲], 후예핀[胡也頻부부와 잡지 《홍흑월간(紅黑月刊)》을 펴내고《회명(會明)(1929) 《충원 자전[從文自傳](1931)과 그의 대표작인 《변성(邊城)(1934) 등을 발표하였다그것들은 주로 자기의 체험에 바탕을 둔 변경에서의 군대생활이나 소수민족의 풍속적 흥미가 감도는 작품들이었으며그로써 혼들리지 않는 작가적 지위를 굳혔다.
작가로서의 출발 당초부터 혁명문학의 정치주의에 대항하였다중일전쟁 중에는 쿤밍[崑明]에 있었고중화인민공화국 정부 수립 후 베이징대학 교수가 되었으나 뒤에 그의 반정치성을 비판받고 자살하려다 미수로 끝났다. 1951년 《나의 학습》을 발표하여 자기비판을 했고창작을 그만둔 뒤 베이징 역사박물관에 근무하며 고고학을 연구하였다미완성의 장편 《대하(大河)(1944) 외에《잣[柏子](1928) 《용주(龍朱)(1929) 《월하소경(月下小景)(1932) 등의 작품이 있다.
출처 : 선충원(沈從文(심종문)) | 네이버 백과사전

대표작품
 <변방의 마을(邊城,변성)>
<중국 현대소설선-3 변성 (양장)>, 심종문 저황소자리, 2009 04

향토색 짙고 유연한 문장으로 독자를 사로잡는 이 작품 『변성邊城』은 중국 고유의 이상향을 드러낸 전원문학의 최고봉이다아직 문명의 손때가 묻지 않은 한 시골 마을을 배경으로 사공 노인과 손녀 취취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두 젊은이의 엇갈린 사랑을 그려낸 이 소설에서작가 심종문은 자연에 순응해 사는 삶의 풍요로운 아름다움을 미려하고 애잔하게 보여준다.
심종문이 『변성』을 완성한 것은 작가로서 완숙한 경지에 도달했던 1930년대 초반이었다제국주의의 침탈로 황폐해진 현실 속에서 개인 삶의 건강성이 무참히 훼손되던 그 시대심종문은 역사의 거대한 수레바퀴에 짓눌리지 않은 자잘한 행복을 통해 당대 보통 사람들을 위무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이 작품을 탈고했다하지만 사회변혁을 외치는 목소리와 사실주의 풍조가 휩쓸었던 당시 문단에서 『변성』의 빼어난 예술성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북경대에 재직하던 시절에는 “입장이 없는 기녀 작가라는 벽보가 나붙었고문화대혁명 기간에는 자본주의 반동작가로 낙인찍혀 문단에서 쫓겨나기도 했다.
 
걸작은 모진 시련을 견딘 후에 그 진가가 돋보이는 법이다짧지 않은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자 『변성』이 지닌 몽환적이고 비의적인 풍격을 예찬하는 독자가 늘어갔고 그의 문학세계는 국제적으로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1988년 심종문이 노벨문학상 최종심 후보에 오르면서 세계적으로 읽히기 시작한 이 작품은 홍콩의 저명한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이 발표한 ‘20세기 중국소설 100에서 노신의 『납함訥喊』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작품을 완성한 것이 1934년 봄이었으니지루하리만치 긴 시간을 견뎌 제 가치를 인정받은 셈이다.

⑥ 노사(老舍라오셔)(1899 – 1966)
인물소개 : 본명은 서경춘(舒慶春), 만주족 출신이며, 1899년 북경에서 출생했다. 1917년 북경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사로 재직하던 노사는 1924년 영국 런던대학 동방학원의 중국어 강사로 초빙되어 6년간을 영국에서 지냈다영국에 있는 동안 서양의 문학작품을 탐독하면서 소설 창작의 기초를 닦고여러 편의 작품을 《소설월보》에 발표하기도 한다. 1929년 귀국한 이후 본격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초기에는 주로 단편소설이었고, <초생달(月牙)>, <취임(上任)>, <천한귀신(微神)>, <유씨네 정원(柳家大院)>, <이씨형제(李氏兄弟)> 등의 작품을 통해 불합리한 사회구조와 모순 속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들의 삶을 진지하게 묘사했다노사의 작품은 시대적 사명감과 문제의식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지만희국적이고 풍자적인 표현으로 당대의 풍속화를 생동감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35년 발표한 장편소설 <낙타상자(骆驼祥子)>는 노사의 대표작이자중국 현대문학사에도 걸작으로 꼽히는 작품이다이 작품을 통해 노사는북경 출신으로서 북경 서민들의 언어와 생활상을 가장 잘 표현한 작가로도 인정받았다.
항일전쟁이 벌어지자 노사는 오랫동안 종사했던 대학의 교수직을 그만두고문예계의 통일전선 조직인 중화전국문예계항적협회(中華全國文藝界抗敵協會)로 자리를 옮겨 일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이후에는 희극 창작에 전념하여 많은 극본을 남겼다하지만 1966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이 시작된 이후 반혁명분자로 몰려 홍위병들에게 심한 박해를 받았고결국 1966년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출처 : 김영구김진공(2007), <중국현대문학론>, 한국방통대출판부, pp.137-139

대표작품
<낙타상자(骆驼祥子), 루어투어시앙쯔>
<루어투어 시앙쯔>, 라오서 저최영애 역,  통나무, 2000 03
  이 작품은 군벌이 통치하는 북경을 배경으로인력거꾼인 주인공 상자(祥子)가 겪는 인생 역정과 그를 둘러싼 당시 중국의 시대상을 다각도로 묘사하고 있다작품의 주인공 상자는 열심히 살아보려고 무진 애를 쓰는 인물이지만 현실은 그의 뜻과 항상 어긋낫결국 난산으로 아내가 죽고 재산은 모두 빚을 갚느라 날리게 되며 마침내 그 자신도 타락하고 만다전체적인 줄거리는 비극적이나세부적으로 드러나는 희극적인 묘사나 풍자적 표현 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출처 : 김영구김진공(2007), <중국현대문학론>, 한국방통대출판부, p.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