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7일 일요일

‘홍루몽’ 쓸쓸하게 사라지는 삶을 위한 헌사

최효찬의 ‘서울대 권장도서 100선 읽기
2014.05.27 10:16:36 입력 , 최종수정 2014.05.28 11:32:43
홍루몽
‘홍루몽’은 여러 번역본이 있는데 이 중 나남출판사에서 나온 번역본은 전 6권에 ‘붉은 누각의 꿈-홍루몽 바로보기’라는 해설서가 있다. 전 12권으로 출간된 번역본(청계)도 있다. 민음사에서도 전 3권(1997년)으로 출간했는데 품절됐다. 이 책은 노골적 성애묘사가 눈길을 끈다.

최근 영화 ‘수상한 그녀’를 보고 오두리(심은경 분)가 영화 속에서 부른 ‘빗물’이라는 노래를 듣다 머리가 쭈뼛하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 인생에서 청춘이란 무얼까, 이 영화를 보면서 새삼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나 하는 말이지만 청춘은 사랑의 시작과 동시에 거의 끝나고 인생 또한 한순간의 꿈처럼 흘러간다.

조설근이 1740년에 쓴 중국 소설 ‘홍루몽’은 중국식 정원을 상징하는 ‘대관원’을 중심으로 가보옥과 임대옥, 설보차를 둘러싼 비극적인 사랑을 한 축으로 하고 ‘가부(賈府)’를 중심으로 한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가 핵심적인 줄거리로 펼쳐진다. 부(府)는 황족의 일족이 사는 집을 일컫는다. 일찍이 ‘홍루몽’을 다섯 번이나 읽은 마오쩌둥은 “ ‘홍루몽’을 읽지 않으면 중국의 봉건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홍루몽’은 중국 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백과사전이자 중국인들의 정신을 대표하는 보고(寶庫)로, ‘홍루몽’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그것에 견줄 만하다고 한다.

‘홍루몽’은 가(賈)씨를 비롯해 사(史), 왕(王), 설(薛) 등 네 가문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로 등장인물만 해도 480명가량 된다고 한다. 여기서 알 수 있듯 이 소설은 읽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120회 중에서 임대옥이 흩날리는 꽃잎을 쓸어 모아 ‘장화총’, 즉 ‘꽃무덤’을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 23회에 이르면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심정이 되고 점점 소설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지금 이 풍진세상에서 한 가지 일도 이루지 못하고 녹록한 인생을 살면서 홀연 지난날 알고 지내온 모든 여인이 하나씩 생각나 가만히 따져보니 그들의 행동거지와 식견이 모두 나보다 월등하게 뛰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제1회)

‘홍루몽’은 영웅호걸을 중심으로 한 ‘삼국지’ 등 이전의 소설과는 확연하게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홍루몽’에서 집안의 중요한 일들을 관리하고 처리해야 할 남성들은 하나같이 무능력하고 책임을 회피하기만 한다. 오히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가모나 왕부인, 왕희봉 같은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처리한다. 특히 ‘금릉십이차’라고 불리는 12명의 여주인공들은 학식과 교양을 갖춘 여인들로 시를 지으며 내면의 깊은 감성을 교류할 줄 안다.

그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이 바로 가보옥과 여성들이 참여하는 시 모임이다. 이들은 가문의 흥성기에 어울리게 시 모임을 만드는데 이름을 ‘해당화시사(제37, 38회)’로 지었다. 이 시 모임은 인생에 비유하면 봄날의 절정에 해당할 것이다. 가보옥과 임대옥, 대관원의 여인들은 시 모임을 만들어 대관원에서 시를 짓고 품평을 한다. 그런데 이들은 이름 대신 아호를 지어 불러준다. “정녕 시 모임을 만든다고 하면 우리 모두가 진짜 시인이 되는 것이니 우선 언니, 동생이니 시동생, 형수님이니 하는 호칭부터 없애야 비로소 속되지 않을 것 같아요.”

아호를 부르면 위계질서를 넘어 자유롭게 서로를 대할 수 있다. 임대옥은 소상비자, 설보차는 형무군, 가보옥은 이홍공자, 이환은 도향노농, 탐춘은 초하객 등으로 서로 아호를 지어준다. 이들은 서로 지은 시를 품평하면서 이상적인 모임을 갖는다. 그러나 이도 잠시뿐이다.

대관원 안에서 머물던 꽃다운 아가씨들도 어느새 하나둘 떠나간다. 가부의 부귀영화를 뒷받침해주던 귀비 가원춘이 세상을 떠나자 대관원에도 어두운 그림자가 스며든다. 흥성했던 가부가 쇠망의 전주곡이 울리던 그 시점에, 시 모임인 해당화시사(제37회)는 도화시사(제70회)로 이름을 바꾸고 다시 시 모임을 연다. 이때는 가보옥과 임대옥, 설보차, 사상운, 보금, 탐춘 등 사람은 줄어들었다. 말하자면 시 모임에서도 봄날은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홍루몽’에서 짧은 청춘의 쓸쓸함과 허무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바로 장화총이다. 봄바람에 꽃비가 내리던 어느 날 아침 가보옥은 ‘서상기’에서 막 ‘붉은 꽃잎 떨어져 수북이 쌓여 있네’라는 구절을 보고 있었다. 때마침 한줄기 바람이 휙 불어오더니 나뭇가지를 흔들어 복사꽃을 거의 절반이나 떨어뜨렸다. 꽃잎은 보옥의 몸과 책, 그리고 바닥 위 어디라 할 것 없이 가득 쌓였다. 이때 대옥이 보옥에게 와서 말한다.

“물에 갖다 버리면 안 좋아요. 자 여길 한번 봐요. 이곳의 물은 그래도 깨끗하지만 흘러내려 가서 사람들이 사는 곳에 이르면 더러운 물과 함께 섞이게 되지요. 결국 꽃잎을 더럽히는 꼴이 된다는 말이에요. 저쪽 귀퉁이에 제가 꽃무덤을 하나 만들었거든요. 그 꽃잎을 쓸어 담아 여기 비단 꽃주머니에 넣어 흙 속에 묻으면 오래 지나도 결국 흙으로 돌아갈 뿐이니 훨씬 깨끗하지 않겠어요?” (제23회)

임대옥은 가보옥과의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점점 사위어가고 그의 말이나 행동, 또 그가 쓴 시어들에는 그 사위어가는 모습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 야윈 마음의 표현이 바로 장화혼이 아닐까. 임대옥은 “싸늘한 달빛 아래 꽃의 넋을 묻는구나”라는 시를 짓는다. 떨어져 묻히는 꽃들에도 혼이 있다는 장화혼은 어쩌면 사랑하는 이에게 더 다가갈 수 없는 마음을 내면화한 처절함의 표현일 것이다. 동시에 죽어서도 혼이 돼 그리워하겠다는 속다짐일 것이다.

그러던 어느 봄날 가보옥은 산등성이 너머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노래를 듣는다. 처음에는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감탄만 하고 있었는데, 뒤에 나오는 이 구절을 듣고는 속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꽃잎 묻는 나를 보고 남들이 비웃지만 / 훗날 내가 죽고 나면 묻어줄 이 누구인가? / 하루아침 봄은 지고 홍안청춘 늙어 가면 / 꽃잎 지고 사람 가니 둘 다 서로 알 길 없네.” (제28회)

듣기만 해도 애절하기 그지없는 이 구절은 연인 임대옥이 노래한 것이다. 속울음 같은 이 노랫말에 보옥은 그만 목을 놓아 통곡하고 만다. 보옥의 다음과 같은 말은 또 임대옥과의 비극적 사랑과 자신의 행로를 암시한다.

“그러다 언젠가 내가 죽어 흩날리는 한 줌의 재가 되거든, 아니 아예 내가 한줄기 흩날리는 연기가 되어 바람이 한 번 불면 흔적 없이 사라지게 되는 날까지, 그래서 더 이상은 돌볼 수 없는 바로 그날까지, 서로 어쩔 수 없는 바로 그 순간까지, 그때가 되면 나는 나대로 가고 너는 너대로 가고, 아무도 서로를 어쩔 수 없을 거 아냐.”

임대옥은 가보옥이 설보차와 결혼식을 치르는 날, 그동안 보옥을 향해 써뒀던 편지들과 시 원고를 불에 태우며 쓸쓸히 죽어간다. 가보옥은 엄한 부친의 독촉으로 과거시험을 보고 급제하지만 과거시험장을 나와 홀연히 사라진다.

“아 어이하랴! 그대의 꽃다운 그 모습과 / 아 어이하랴! 물처럼 흐르는 이 세월을 / 흐르는 물, 지는 꽃잎 모두 무정하여라.”

‘홍루몽’에서 알 수 있듯 아무리 부귀영화를 누리는 거대한 가문도, 어여쁜 여인들의 모습과 청춘도 결국 물거품과 꿈같이 슬픔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다. 결국 ‘홍루몽’은 당대의 누적된 봉건체제에 대한 은유적 비판과 함께 우리들 인생은 한바탕 남가일몽이라는 깨우침을 전하고 있다고 한다.

“꽃향기가 몰려오니 한낮이 따뜻함을 알겠노라.” (제28회)

이 시구처럼 사람들은 꽃이 져도 여전히 꽃향기가 진동하는 봄날의 오후, 그 노곤함에 빠져 있는 꿈을 꾸는 것은 아닐까. 그 노곤함에서 깨어나 보면 인생은 이미 봄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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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근대소설의 효시라 불리는 <홍루몽>. 청대 18세기 중엽 조설근이 쓴 장편소설로, 가賈, 사史, 왕王, 설薛, 네 가문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야기이다. 등장인물만 해도 500명이 넘는다. 작품의 핵심 줄거리를 크게 두 축으로 말하자면, 가보옥과 임대옥, 설보차를 둘러싼 비극적인 사랑과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라 할 수 있다.

주인공 가보옥은 당대 최고 귀족 집안인 영국부에서 할머니 대부인의 비호를 받으며 애지중지 자란 귀공자이다. 많은 사람들의 사치와 대관원 등의 건축으로 차차 기울기 시작하는 가씨 집안에서, 보옥은 가정적이며 건강한 설보차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지지만 사촌누이인 임대옥과의 결혼을 더 원한다.

그러나 집안의 실권을 쥔 할머니 사태군은 대옥의 몸이 허약하여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계략에 속은 보옥이 보차와 결혼하던 날, 대옥은 쓸쓸히 숨을 거둔다. 인생무상을 느낀 보옥은 과거장에서 그대로 실종된다. 후일 아버지 가정과 비릉의 나루터에서 만나지만, 보옥은 목례만 보내고 눈길 속으로 사라진다.

또, 홍루몽 시리즈를 발간한 '나남출판사'의 책소개도 도움이 되실 것 같네요. ^^*

중국에서 현재진행형인《홍루몽》열풍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중국고전을 꼽으라면 아마도 단연《삼국지연의》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 군담소설(軍談小說), 판소리 등에서부터 오늘날 다양한 문화콘텐츠에 이르기까지《삼국지연의》가 한국인의 정서와 문화에 미친 영향은 그 분야와 깊이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하지만 정작 이러한 상황에 대해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너무도 의아해한다.《삼국지연의》가 명작임에는 틀림없지만 한국인들이 유독 이 작품에만 열광하는 이유를 스스로 알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인들이 그토록 사랑하고 아끼는《홍루몽》이 한국에서 별 반응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사실을 접하면 또 한 번 놀라워한다. 중국은 이렇듯 우리에게 가까운 것 같으면서도 먼 나라이다.
일찍이《홍루몽》을 다섯 번이나 읽은 마오쩌둥(毛澤東)은 “《홍루몽》을 읽지 않으면 중국의 봉건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홍루몽》은 중국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백과사전이자 중국인들의 정신을 대표하는 보고(寶庫)로,《홍루몽》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은 셰익스피어에 대한 영국인들의 그것에 견줄 만하다. 이 때문에《홍루몽》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은 과거에 묻혀있는 것이 아니라 항상 현재진행형으로 일어나고 있다.《홍루몽》의 인물들이 어디에서 살았고 무엇을 먹었고 어떻게 입었는지에 대한 관심은 늘 뜨겁다. 예컨대 이야기 배경이 되는 대관원(大觀園)은 중국황실 황비의 친정나들이를 위해 지은 것인데, 베이징과 상하이 등지에 재현되어 1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홍루몽》의 연회를 재연하는 홍루연(紅樓宴)은 베이징이나 타이베이의 최고급 호텔에서 매번 개최될 때마다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이처럼《홍루몽》을 세심하게 이해하고 연구하려는 중국인들의 관심으로부터 이른바 ‘홍학(紅學)’이라는 학풍이 형성되었는데, 홍학관련 연구단체가 학술 전문가뿐 아니라 동호인들 사이에도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있는 사실은《홍루몽》에 대한 중국인들의 관심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여실하게 보여준다.

또한《홍루몽》은 최근 중국의 문화콘텐츠 시장에서도 가장 주목받는 이슈가 되고 있다. 현재 베이징TV에서 50부작 드라마《홍루몽》이 제작중인데 베이징TV가 출연진 선정에 공개오디션 방식을 취하면서 기획단계에서부터 중국대륙 전체에 오디션 열풍을 일으켰다. 2006년 당시 최종적으로 13만 8천 명이 오디션에 지원하였고 그 중에서 남자 주인공인 가보옥(賈寶玉) 역에 4만 500명, 여주인공인 임대옥(林黛玉) 역에 1만 2천명이 지원했다고 한다. 신청인 중에는 60%가 대학생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이러한 현상 이면에는 스타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욕망과 제작진의 상업적인 전략이 맞물려있겠지만《홍루몽》에 대한 관심이 젊은 층에도 광범위하게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홍루몽》은 18세기 중반에 나온 중국 최고의 명작소설이다.《홍루몽》이 나온 지 2백여 년이 지났지만 일찍이 19세기 초반에 영어번역문이 나온 이후 지금까지 전 세계 20여 종의 언어로 약 100여 종의 번역이 나올 정도로 그 인기는 현재까지 온전하다. 수 세기 동안 읽혀 온《홍루몽》을 다시 손에 들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홍루몽》이 중국인의 의식구조와 생활습속을 이해하는 데 가장 좋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감성세계를 정교하게 그려낸 소설로서 인생의 교과서와 같은 이 작품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인생의 진리가 보이고 인간관계의 이치란 무엇인지 새롭게 깨달을 것이다.
잔잔한 선율과도 같은《홍루몽》은 거창한 명분이나 이론을 독자들에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인간이 살아가는 데 ‘강한 것’이 아니라 ‘약한 것’이, ‘직선’이 아니라 ‘곡선’이, ‘이성’이 아니라 ‘감성’이 궁극적으로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애잔한 느낌으로 잘 드러내고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허무주의 혹은 현실에서의 패배처럼 보이지만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휴머니즘이라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중국 근대소설의 효시
‘비극적인 사랑’과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

《홍루몽》은 청대(淸代) 18세기 중엽 조설근(曹雪芹)이 쓴 장편소설로 당시 세상에 알려지면서 곧바로 독자들로부터 주목을 받았고 중국 전역으로 빠르게 전파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독자층 또한 상당히 광범위하게 형성되었다.《홍루몽》은 가(賈), 사(史), 왕(王), 설(薛) 등 네 가문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이야기로 등장인물만 해도 500명이 넘는다.《홍루몽》이라는 이름 외에도《석두기》(石頭記),《정승록》(情僧錄),《풍월보감》(風月寶鑒),《금릉십이차》(金陵十二釵) 등의 제목으로 불리는 것을 보더라도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과 주제 역시 매우 방대하고 풍부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문에 한 마디로 전체를 개괄하기는 어렵지만 작품의 핵심 줄거리를 크게 두 축으로 말하자면 가보옥(賈寶玉)과 임대옥(林黛玉), 설보차(薛寶釵)를 둘러싼 ‘비극적인 사랑’과 ‘가씨 가문의 흥망성쇠’라 할 수 있다.

홍루의 봄날은 꿈결처럼 사라지고
주인공 가보옥은 당대 최고 귀족 집안인 영국부에서 할머니 대부인의 비호를 받으며 애지중지 자란 귀공자이다. 무엇보다 입신양명에 눈이 먼 사대부들을 혐오하며 섬세하고 여성적인 가치들을 인생의 진리로 여긴다. 많은 사람들의 사치와 대관원(大觀園) 등의 건축으로 차차 기울기 시작하는 가씨 집안에서, 보옥은 가정적이며 건강한 설보차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지지만 사촌누이인 임대옥과의 결혼을 더 원한다. 그러나 집안의 실권을 쥔 할머니 사태군은 대옥의 몸이 허약하여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 할머니의 계략에 속은 보옥이 보차와 결혼하던 날, 대옥은 쓸쓸히 숨을 거둔다. 인생무상을 느낀 보옥은 과거장에서 그대로 실종된다. 후일 아버지 가정과 비릉의 나루터에서 만나지만, 보옥은 목례만 보내고 승려와 도사 사이에 끼여 눈길 속으로 사라진다. 언뜻 보면 단순한 러브스토리나 가문변천사로 비춰지는 이 이야기에 중국인들은 왜 이처럼 열광하고 집착하는 것일까?

《홍루몽》을 글자대로 풀이하면 ‘붉은 누각의 꿈’이다. 그 화려한 붉은 누각에는 부잣집의 귀한 딸들이 살고 있으며 여인들의 천국이자 청춘이 피어나는 아늑한 정원이다. 하지만 인생의 봄날은 결코 길지 않다. 따스한 봄이 저만치 가버리고 흐드러지게 피었던 꽃잎도 문득 우수수 떨어지듯 청춘은 그렇게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붉은 누각에서 꾸는 꿈은 짧고도 아름다운 청춘의 꿈이요, 봄날의 꿈이다. 인생은 한바탕 꿈이라고 하지 않았던가.《홍루몽》은 바로 꿈이라는 은유를 통해 인생의 허무함을 절절한 심정으로 노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왕궈웨이(王國維)와 같은 대학자는《홍루몽》을 ‘욕망의 비극’ 혹은 ‘인생의 비극’이라고 지적하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비극적 죽음, 가문의 몰락 등 인생의 모든 꿈들이 그렇게 사라지는 것에 대해 중국인들은 늘 애통해하고, 이를 통해 인생과 우주의 지극한 이치를 깨닫는다.

영웅호걸을 중심으로 한 이전 소설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면모
루쉰(魯迅)은 “《홍루몽》이 나타난 이후로 전통소설의 모든 사상과 작법이 타파되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는데 확실히《홍루몽》은 그 이전의 작품들, 즉 영웅호걸을 중심으로 한《삼국지연의》나《수호전》,《금병매》등과는 확연하게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특히 남자주인공인 가보옥은 남존여비와 입신양명을 극도로 혐오하는, 남성중심 혹은 유교중심의 봉건사회에 반항하는 이단아라 할 수 있다. 또한 ‘금릉십이차’(金陵十二釵)라고 불리는 여주인공들도 학식과 교양을 갖춘 여인들로 서로 시를 지으며 우애를 돈독히 하고 내면의 깊은 감성을 교류한다. 이는 그 이전의 작품에서 여주인공들이 남성에게 종속적인 존재로 그려지거나 혹은 작품에서 부수적인 역할로만 묘사되었던 것과는 판연히 다른 점이다.《홍루몽》은 그야말로 세상의 약자인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간 유토피아 그 자체이다.


우리나라에서의《홍루몽》의 위상
현재 우리나라 독서계에서《홍루몽》에 대한 관심은 그리 크지 않지만《홍루몽》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일찍이 조선시대부터 시작되었다. 1800년대 초《홍루몽》이 조선에 전파되어 궁중의 비빈들이나 권문세가의 여성독자들 사이에서 널리 애독되었다.《홍루몽》의 우리말 번역본은 1884년경 역관 이종태(李鍾泰)를 비롯한 문사들이《홍루몽》120회를 완역한 것이 효시가 되었는데 이는 사실상 세계 최초로《홍루몽》이 완역된 사례이다.
우리나라에서《홍루몽》이《삼국지연의》만큼 인기를 얻지 못하는 데에는 다양한 원인들이 있겠지만 가장 근원적인 이유는 바로 체계적인 역주 작업이 없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1918년과 1925년에 양건식(梁建植)이, 1930년 장지영(張志瑛)이 신문에 장기간《홍루몽》을 신문연재소설로 번역하여 게재하였지만 아쉽게도 완역하지는 못했다. 1950년대 이후로《홍루몽》번역서가 수차례 걸쳐 출판되기는 하였지만 대부분 비전문가들이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重譯)하거나 축약하여 출판한 것이었다. 혹은 완역이라고 하였으나 부분적으로 상당부분 첨역하여 원전과는 다르게 출판된 것이 주를 이루고 있어《홍루몽》의 문학적 가치와 의미를 독자들에게 올바르게 보여주기엔 부적절한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90년대에 중국 조선족 번역가들이 작업한《홍루몽》번역본은 우리 독자들이 읽기에 생경한 느낌을 주는 조선족 사투리 혹은 북한말의 어투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독서의 즐거움이란 작품의 내용뿐 아니라 표현된 언어가 주는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이러한 현실적 제약은 참신하고 세련된 감각을 추구하는 한국의 젊은 독자층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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