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 세상을 재현하다! 베이징 대관원
책 속 세상을 재현하다! 베이징 대관원
중국 4대 고전 '홍루몽' 속으로
얼마 가지 않아 그들 앞에 웅장한 누각이 나타났는데, 곳곳이 마치 신선세계의 건물들이 어우러진 듯하고,
높다란 복도가 뒤엉켜 있었다… – 조설근作 [홍루몽] 中 p. 381
높다란 복도가 뒤엉켜 있었다… – 조설근作 [홍루몽] 中 p. 381
중국의 4대 명저 (삼국지, 수호전, 서유기, 홍루몽) 중 하나인 소설 '홍루몽'. 비록 '금병매'와 그 4번째 자리를 다투긴 하지만, 홍루몽의 작품성에는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홍루몽은 중국 청나라 시대 소설가 조설근(1715 ~ 1763)의 작품으로, 조설근은 증조부, 조부 때 황실의 큰 신임을 얻어 크게 번성한 난징 귀족의 자제였다. 증조모는 청나라 황제 강희제의 유모였고, 조부는 ‘강녕직조’라고 하는 황실에서 사용하는 직물 제조소의 우두머리로, 높은 벼슬을 지냈다.
그러나 조설근의 아버지가 일찍 죽고, 숙부가 대를 이으면서, 또 황제도 강희제에서 옹정제로 바뀌며 가세가 심하게 기울게 된다. (옹정제는 당시 세도가들을 척결하는데 힘썼는데, 조설근의 집안도 그 대상이 되었다.) 조설근은 결국 베이징으로 이사를 하여, 그곳에서 글도 짓고 그림도 그리며 가난한 삶을 이어갔다.
베이징에 '홍학(홍루몽을 연구하는 학문)' 연구자들이 모여, '홍루몽' 속 건축물을 그대로 구현해 두었다는 대관원을 찾아가 보았다.
▲ 대관원 매표소
작품 '홍루몽'은 조설근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의 주 배경은 난징의 세도가 가씨 집안의 대저택. 가씨 집안의 장자인 가보옥과 그가 사랑한 사촌누이 임대옥이 있다. 그러나 임대옥이 몸이 약하다는 이유로 집안 어른들의 반대에 부딪혀 대옥과 보옥의 사랑은 이뤄지지 못한다.
결국 보옥은 다른 사촌누이인 설보채와 결혼을 하게 된다. 대옥은 보옥과 보채의 결혼식 날 세상을 떠난다. 이후 가씨 집안은 운이 쇠하여 가세가 기울고, 좋지 않은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결국 보옥은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고 속세를 떠난다는 내용이다.
▲ 대관원 입구
▲ 소설 속 인물의 복장을 한 할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홍루몽'은 조설근이 10년에 걸쳐 집필하였지만, 결국 끝을 맺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기에 이후 고악이라는 사람이 마무리 지었다고 전해진다. 소설 속 등장인물만 500명에 달하며, 그들 한 명 한 명 캐릭터에 대한 묘사가 치밀하고 생생하다. 물론 인물묘사만큼이나 빼어난 것은 소설의 배경이 된 보옥의 집, 가씨 집안 저택을 배경으로 한 당시 세도가의 삶과 문화에 대한 스케치였다.
▲ 책의 묘사대로 살펴보게 되는 문틀과 창살의 꽃 문양
소설에서는 보옥의 친누나인 가원춘이 귀비가 되어, 궁으로 들어가 현덕비에 봉해진다. 가씨 집안에서는 현덕비의 친정 방문에 쓰일 정원을 막대한 비용을 들여 조성하는데, 바로 그 정원이 대관원이다.
녕국부 화원 안에서 북쪽으로 돌아가는 부분을 측량해보니 삼 리 반이라, 현덕비께서 가족에게 인사하러 오실 때 쓸 정원을 지을 만하다는 것이지요…
- 조설근作 [홍루몽] 中 p. 353
- 조설근作 [홍루몽] 中 p. 353
▲ 인형으로 만들어둔 보옥의 누이 가원춘 (현덕비), 미모와 재덕을 겸비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1983년에 '홍루몽을 드라마로 제작을 위해 만들어진 이 곳은, 1986년 문화명소로 정식오픈하였다. 가이드북에 연못의 위치, 식물의 종류까지도 소설 내용과 일치하도록 신경 썼다고 써 있는데, 나는 '홍루몽'을 읽었는데도 어디가 어딘지 하나도 모르겠다는 조급증과 압박감에 시달렸다.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동행한 친구의 한 마디. '아무리 대왕세종이나 용의 눈물 같은 역사 드라마를 열심히 보았어도, 경복궁에 가면 전혀 어디가 어딘지 모르지 않냐, 하물며 중국인데 한 두 번 책 읽은들 어떻게 알아보겠어.' 큰 위로가 되었다.
▲ 대관루
그러나 비록 어디가 어딘지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이 대관원 자체는 꽤 잘 만들어 둔 정원이었다. 초록빛 나무들과 붉은 건물들이 보색을 이루어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또 연못 위에 놓인 회랑도 운치가 있었다. 하지만 소설에 그려진 것처럼 시원한 산이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을 대신하여 높은 건물들이 보이는 점은 조금 분위기가 아쉽다.
소설 속에는 현실 세계 같지 않은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재현된 대관원에는 매우 현실스럽게도 (소설의 명문가 주인공들과는 한참 동떨어진 듯한 분위기의) 할아버지들이 모여 장기를 두고 있었다. 이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소설을 읽으면서 머릿 속에 그렸던 모습보다는 많이 부족한 느낌. 수려한 글을 공간으로 옮겨 담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꼈다. 하지만 1-2시간 짧은 시간이나마 18세기 중국의 세도가가 된 듯, 이 넓은 공간이 나의 집인양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즐겨보는 일도 꽤 즐거운 일이었다.
INFORMATION
주소: 北京市西城区南菜园街12号
가는방법:
1) 택시 – 왕푸징 시내에서 약 10km
2) 버스 – 53, 56, 122, 474, 800내환(内环)번 버스
개방시간: 7:30 ~ 17:30
입장료: 성인 40元(위안), 학생 20元(위안)
홈페이지: http://www.bjdg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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