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7일 일요일

근, 현대 미술로의 초대 14th Hour : Pop Art, Nouveau Realism 팝아트, 신사실주의

근, 현대 미술로의 초대 14th Hour : Pop Art, Nouveau Realism  팝아트, 신사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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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o Dada

Robert Rauschenberg (1925-2008)                                 Jasper Jones (1930-)
                                                      
2차 대전이 1945년에 끝난 후에도 전쟁은 계속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국가들 사이에1차 중동 전쟁이 있었고, 1950-53년에는 Korean War, 1955-75년에는 Vietnam War 가 있었다. 50년대에 추상표현주의가 미국과 전 세계를 휩쓰는데, 이에 반대하는 Pop Art 라는 새로운 paradigm 이 1960년대에 나타난다.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자스퍼 죤스가 주축이 된 신다다 Neo Dada 운동은 팝아트로 넘어가는 다리역활을 한다.  

Rauschenberg, Bed 1955   
 
라우센버그는 자신이 자는 침대와 이불 베개를 가져다 놓고, 그 위에 폴락의 action painting 처럼 물감을 뿌리며 덧 바르는 작업을 하며, 추상표현주의를 parody 한다. 폴락이 물감을 뿌리는 action 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표현한다고 하는데, 라우센버그는 침대 자체를 가져와서 침대만큼 작가의 private life 를 표현하는 것이 어디에 있는가? 하고 묻는다. 일상의 물건과 painting 이 합쳐진 combine painting 의 개념을 시작한다.

Rauschenberg, Monogram 1956

라우센버그는 바닥에 캔버스를 놓고 그림을 그린 다음 염소의 박제와 타이어를 결합시켜 붙였다. 폴락은 바닥에 캔버스를 눕혀 놓고 작업을 하는 이젤혁명을 가져왔다고 평가되는데 전시할 때는 캔버스를 벽에 세로로 붙여 다시 세운다. 라우센버그는  폴락과 반대로 바닥에 눕혀서 전시를 하면서, 폴락에게 이젤을 버리는 혁명을 가져온 사람이 전시도 눕혀서 해야지  ‘왜 세워서 전시해?’ 하고 cynical 하게 반문한다. 피카소의 꼴라쥬 혁명과 뒤샹의 readymade 로 인해 painting 장르는 끝이 난 것처럼 보였는데, 폴락이 추상을 통해 painting 의 르네상스를 되돌려 놓았다. 그런데 라우센버그는 painting 과 readymade 를 조합한 combine painting 을 가져옴으로서 그림과 조각의 장르를 흐려놓는다.

Jasper Johns, Flag 1954-5 
 

1954년에 27세 청년 자스퍼 죤스가 Flag 를 그리자 마자 모마의 curator 들은 천재가 나타났다고 하면서 그의 그림을 구입하기에 바빴다. 왜 그렇게 큐레이터들이 사려고 했을까? 깃발 사이의 흰 색면은 신문지를 바른 꼴라쥬 (피카소처럼) 이며, 그 위에 물감을 덕지덕지 바른 느낌을 주도록 (추상표현주의처럼) 밀납 encaustic 으로  발랐다. 전대와 당대의 예술 사조와 dialogue 하는 동시에 질문을 하고 있다. 죤스는 ‘이것이 깃발입니까? 깃발 그림입니까?’ 하고 묻는다.

Clement Greenberg 가 추상표현주의를 극구 칭찬했던 이유는 잭슨 폴락같은 훌륭한 화가를 통해 그림이 더 이상 재현을 하지 않고 그림만이 할 수 있는 완전 추상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그림이 아무리 잘 그려졌다 하더라도 실물보다 못하다는 혹은 story 보다 못 하다는 열등한 자리에 그림은 역사적으로 놓여 있었다. 그런데 추상표현주의 운동이 나타나서 이제야 가까스로 그림이 부차적인 역활에서 벗어나 캔버스의 평면성을 살리고 재현이 전혀 없는 회화의 궁극점에 드디어 도달했다고 폴락에게 극찬을 퍼부었던 것이다. 그런데 새파란 나이의 청년 죤스가 나타나 재현이기도 하고 실물이기도 한 깃발을 보이면서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나누는 추상표현주의의 이분법적 사고가 예술에서 그렇게 중요한가? 하며 질문을 던진다. 화가들이 재현에 대한 강박관념과 complex 를 가지고 있었음을 드러낸다. 자신이 내 놓은 Flag 처럼 그림이 될 수도, object 가 될 수도 있는데, 장르를 꼭 구별해야 하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예술에 적용을 시켜야 하는가를 꼬집는다.
사회적으로 열등하게 여겨졌던 그림과 화가의 위치를 뒤집은 것이 20세기의 추상표현주의였다. 그림의 역사 80-100년 동안 화가들은 실물 재현을 않하기 위해 표현으로, 추상으로 부단하게 노력을 해 왔다. 이제 겨우 회화의 최고봉에 도달했는데 그동안 아무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을 죤스가 뜬금없이 나타나서 ‘추상표현주의? 그게 과연 최고인가? 하고 말한다. ‘미술이 재현 representation 을 하면 어때서?’라고 공격한다.
Jasper Johns, Target with Plaster Casts 1965
 

라우센버그는 object 와 painting 을 combine 해서 추상표현주의를 parody 했고, 죤스는 그림인 것 같은데, 동시에 과녁이기도 한 것을 내 놓고, 추상표현주의를 정조준하여 재현 대 추상이라는 대립각을 지적하면서 ‘왜 쓸데없는 것에 집착을 하고 그래?’ 하면서 사회에서 한번도 의심않던 질문을 툭 던진다. 100년 가까이 재현에서 벗어나 추상으로 가려고 고민해 왔는데 그게 왜 중요한가 반문하니 추상표현주의자들은 맥이 쑥 빠진다. 다다운동은 1차 대전 중에 스위스의 취리히에서 반예술운동으로 생겼는데, 2차 대전 후에 뒤샹의 readymade 를 도입한 후에 한 차원을 높여 Neo-Dada 라는 이름으로  라우센버그와 죤스에 의해 시작되며 팝아트로 건너가는 bridge가 된다.


Pop Art

Roy Lichtenstein 1923-1997                                                  Andy Warhol 1928-1987
                                                      
리히텐슈타인과 와홀은 추살표현주의를 공격한 죤스에게 충격을 받는다.

Roy Lichtenstein, Whaam 1963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1969년대에 만화책 이미지를 차용하여 만화종이의 Vandyke Dot 의 재질이 그대로 드러나게 그림을 그렸다. 만화는 low culture 와 mass culture 의 대표적 이미지인데 high and elite 예술인 추상표현주의와 대립각을 세운다. 추상표현주의는 Partisan Review 에 실리는 글을 읽는 계층이 감상하는 그림으로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계층으로 포장된다. 리히텐슈타인은 일부러 잡지, 만화를 소비하는 사람들의 저급문화를 가져와서 high art 와 low art 를 모호하게 하는 전략을 쓴다.

Roy Lichtenstein, The Drowning Girl 1963
 

또한 리히텐슈타인은 대중 문화의 contents 를 교묘하게 parody 한다. 만화책 image 를 똑같이 그대로 깨끗하게 그렸다. 사람들은 값싼 로맨스를 끊임없이 소비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현실을 직시했을 때 겁이 나므로 soap opera, TV, 만화책에 마취된다. 현재는 불행해도 happy ending 이다. 대중이 문화를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전혀 비판없이 받아들임으로서 오히려 만화 속의 아줌마처럼 거기에 빠져들고 대중 문화에게 먹힌다. 눈물 흘리면서 자신의 stress 를 대중 문화 속에 들어가 잊으려고 한다. 민주주의 가면을 쓴 전체주의 국가 미국은 대중이 민주 국가임을 믿어 의심치 않도록 대중문화 속에 묻혀서 달콤하게 한가지 생각만을 하게 만든다.


Andy Warhol, 210 Coca Cola Bottles, 1962
 

잭슨 폴락은 붓이 캔버스에 닿지 않는 혁명 drip painting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와홀은 아예 붓을 쓰지도 않고 silk screen 기법으로 판화처럼 찍어낸다. 자신의 스튜디오 이름도 ‘The Factory’ 라고 붙이고, 작가가 하지 않고 조수를 시켜 찍어내므로 듀상피엔 Duchampian 하다고 할 수 있다. 대중은 폴락의 그림보다 앤디 와홀의 마릴린 몬로, 재클린 케네디 등의 celebrity 이미지가 더 쉽고 친숙하다고 느낀다.

Andy Warhol, Turquoise Marilyn 1962
 

그런데 문제는 박물관에 와서 몬로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나니 입장료가 좀 아까운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휴일에 일부러 모마에 와서 문화산책을 좀 하려고 했는데, 폴락의 그림을 보고 나면 조금 이해 안 되어도 뭐 좀 본 것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것은 아니다. 와홀은 대수롭지 않은 이미지를 박물관에 걸어 놓으면 대중이 ‘왜 그럴까?’ 하고 낯설게 보고 생각해 보기를 희망했다. ‘여러분이 소비하는 상품, 유명인사에 대해 생각 좀 해 보세요’ 하는 의도였지만, 대중은 생각없이 ‘재밌네’ 하고 치워버린다. 대중이 예술과 대중문화에 대한 태도의 이중적 잣대를 지적하며, 대중문화를 parody 하려는 의도이다.


신사실주의 Nouveau Realism

Pierre Restany 1930-2003                                                              Yves Klein 1928-1962                                       
                                                      
Nouveau Realism 은 피에르 레스타니가 신사실주의 선언문을 쓰고 여러 작가들이 공동 서명을 함께 하고 시작한 운동이다. 2차 대전 후 유럽의 추상에 대한 반향으로 나온 운동으로 1960년대 미국에서 케네디 대통렬,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있을 무렵에 프랑스는 알제리 전쟁(1954-1962) 을 치룬다. 누보리얼리즘은 알제리를 독립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프랑스 식민지인 북아프리카 알제리의 독립전쟁에 2명의 유명 문인이 개입이 되어있다. 노벨상 작가인 알베르 캬뮤 Albert Camus는 알제리 태생으로 프랑스로 유학을 가서 대학을 다녔지만 어머니는 알제리에서 산다. 또 다른 작가는 알제리의 정신과 의사인 프란시스 파농 Frantz Fanon 으로 Black Skin White Mask 라는 책을 썼으며, 알제리 독립 전선을 구축한다. 이 책은 2차 대전 후 아랍 전체의 탈식민화에 중요한 책이 된다. 피부는 검은데 백인의 마스크를 쓴 계층, 소위 식민지 사회의 엘리뜨 계층을 정조준한 책으로 피부가 검은 알제리 사람이 프랑스식 교육을 받아 사고는 프랑스인처럼 한다. 알베르 캬뮤는 ‘왜 알제리가 독립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 프랑스 식민지 상태에서 잘 먹고 잘 사는데’ 라고 생각한다. 캬뮤는 알제리아와 프랑스간의 휴전 혹은 프랑스 영에서 자치권을 더 가지자는 입장을 취한다. 파농은 알제리아 사회에서 자본과 힘을 가진 자는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책에 담고 있다. 역사를 결과론적 teleological 으로 해석한다는 것은 현재의 모습을 보고 과거를 해석한다. 그 당시에 못 살았던 이야기도 지금 잘 살면 향수 nostalgia 로 남아 추억거리로 이야기 꽃을 피운다. 일본의 식민지였기에 오늘의 한국이 잘 산다는 식민사관도 역사를 결과론적으로 보는 결과이다.
알제리 전쟁을 겪은 샤를 드골 대통령(1890-1970)은 1969년까지 약 10년 간 프랑스 제5공화국을 통치하는데, 역사를 소급해가서 과거에 대한 정리를 확실히 한다. 2차 대전으로 돌아가 나치 협력자를 철저히 찾아낸다. 900개의 언론사 중 700개를 찾아내어 폐간, 재산 몰수를 하며 나치 협력자 20만 명을 감옥에 보낸다. 드골 대통력이 역사의 오점에 대한 정리를 확실히 하였기에 그 이후 프랑스에서는 나치와 협력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없어진다. 여기에 반해 우리나라는 일제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남아있다. 드골은 알제리 독립을 옹호했고, 나치에 협력한 언론을 폐간시켰고, 중공을 인정하였으며, 할 말을 하는 외교 정책을 폈다.
Yves Klein, Blue Monochrome 1961                    
 

Nouveau Realist 들은 거의 painting 은 하지 않는데 이브 클라인은 유일하게 회화를 하는 작가이다. 화면에 파란색으로 칠을 하고 파란색에 대한 특허권을 딴다. 그 당시 추상운동인 앵포르멜이나 색을 가지고 평면성을 살리는 추상표현주의를 parody 하는 작전으로 추상화는 소도비나 부잣집에 걸리는데 나는 아예 색깔에 특허를 낸다. 파란색을 쓰고 싶으면 나에게 허락을 맡어 하는 의미이다. 독특하고 기이한 행동을 많이 하는 작가로 알려져 있다.
   
Yves Klein, Leap into the Void, 1960
 

이브 클라인이 공중에서 뛰어 내리는 장면인데, 밑에 깔린 매트리스는 편집을 하면서 사진에서 삭제를 하였다. 허공을 나르는 이미지를 조작한 사진이다. Abstract __EXPRESSION__ist 가 만든 stereotype 은 예술가를 천재의 반열, 신적 위치에 올려 놓았다는 점이다. 잭슨 폴락, 로스코가 너무 중요해 그 작가가 아니면 그런 작품이 절대 나올 수 없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뒤샹이 변기를 들고 나와 예술가의 지위를 강등시켜 놓았는데 추상표현주의자들은 다시 한번 예술가를 스타 반열에 올렸다. 이것을 비꼬기 위해 클라인은 ‘나는 신처럼 나른다’ 하면서 추상표현주의자들을 조롱한다. ‘너희처럼 그리는 것보다 나는 더 훌륭한 능력을 가졌다.’

Yves Klein, Shroud  Anthropology 1960
                             
클라인은 action painting 을 보여주겠다면서 관객을 청하는데, 아름다운 옷을 차려입은 부인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첼로 음악이 연주되고 클라인이 누드 모델들과 같이 들어온다. 모델의 몸에 페인트 양동이를 들이 쏟아붓고, 막 끌고 다닌다. 더 할 나위 없는 action 으로 추상표현주의의 action skill 을 parody 한다.

캔버스에 불을 지르고 화염으로 쏘아서 그림을 그린다. CoBrA 코브라의 광기로 그린 그림, 추상표현주의의 action 을 조목조목 집으면서 ‘이건 어때? 저건 어때?’ 하면서 조롱한다.


Niki de Saint Phalle 1930-2002                        Jean Tinguely 1925-1994                                              
                                                                                           
니키 드 셍팔은 원래 패션모델이었는데, 쟝 팅귤리에와 결혼하고 나서 작가로 활동을 한다.

Jean Tinguely, Homage to New York 1960      
 
쟝 팅귤리에의 performance 이다. 고물 부품을 줏어서 기계 조합을 만들어 MoMA 의 정원에서 잠시동안 보여주더니 조금 있다가 기계가 연기내면서 스스로 부서진다. 작가의 일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인데, 팅귤리에는 유에서 무로 거꾸로 간다. 그의 작품은 사진으로만 남아 있으며 여기에 institution critique 이 암시되어 있다. 뒤샹은 object 를 institution 안에 전시했지만 팅귤리에는 1분 동안만 예술이라고 전시하고 끝, 다시 쓰레기로 돌아간다. 뒤샹보다 한걸음 더 나간 생각이다.

Niki de Saint Phalle, Black Venus 1965-67
 
기존의 Venus 는 뽀얗고 하얀 살결을 보이지만 니키드셍팔은 쓰레기 같은 신문을 가져다가 반죽을 빚어 그 위에 물감을 칠해서 커다란 Black Venus 만들고 잡지 광고에서 보이는 듯한 수영복을 입히고 공놀이를 하는 모습으로 표현했다. 백인의 미녀 뷔너스를 절대로 의심 안하는 stereotype 을 꼬집고 있다. 

Niki de Saint Phalle, She: A Cathedral 1966

              
관람객은 굉장히 불편해하면서 성당 안에, 어머니의 자궁 안에 들어간다. 그 안에 bar 와 영화 감상 공간이 있다. 설치작품으로 엄청난 sensation 을 일으켰다. 여자 도상 icon 을 다른 각도로 들여다 본다. 신사실주의 작가들은 museum, gallery 의 정의를 괴롭힌다. 루브르 박물관도 이 전시를 거부했고 거의 모든 갤러리가 이 전시를 받아주지 않았다. 과연 museum 은 뭐하는 공간인지? 관객은 어떤 기대를 갖고 오는지? 박물관 institution 을 비판의 눈 critique 으로 보자는 의도이다.


Arman, Long Term Parking 1982

폐차된 자동차를 모아서 18 meter 의 높이의 콘크리트로 쌓았다. Nouveau Realist 들은 거의 다 오브제를 가지고 작업을 한다. 사회가 뱉어놓은 쓰레기를 가지고 아샹블라쥬를 만들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960년대에 Junk Art 를 시작한다. 앵포르멜이나 추상표현주의보다 훨씬 더 사회 속으로 들어가는 social engagement 작업이다.


Christo, Package 1963
 
크리스토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모를 보따리를 싸고, 의자도 싸고 자꾸 싼다. 초기에는 작은 것만 싸다가 나중에는 아예 큰 것을 싼다. 해변가도 싸고, Central Park 도 싸서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아르망이나 니키드셍팔보다 더 파격적이다.

Christo and Jeanne-Claude Running Fence 1972-76
 


Christo and Jeanne-Claude, Wrapped Reichstag, Berlin 1971-1995
 

베를린 국회 의사당을 쌌다. 낯설게 하기 효과이다. 팝아티스트는 대중적인 이미지 low art 를 박물관 안으로 가지고 들어갔고, 신사실주의 작가는 이제 박물관은 필요없고, 밖으로 나가는 대지예술  Land Art 을 한다. 늘 보는 쓰레기, 폐차를 가지고 새로운 환경을 공원에 조성을 하고, 천으로 건물을 싸 놓으면 사람들은 다시 한번 본다. ‘저거 왜 싸 놓았어? 국회의사당이 뭔데?’ 크리스토는 역사의 흔적이 있는 장소를 싼다. 1971년부터 국회 의사당에 작업을 하겠다고 신청했으나, 매년 국회위원들이 부결시켰고, 1989년에 동서의 장벽이 무너지고, 1995년에야 비로소 허가가  떨어졌다. 예술가가 공공의 project 를 하려면 역사적, 국가적 이미지, 정치가 개입이 되고, 그들의 속내가 드러난다. 일종의 collective unconsciousness 를 들추어내는 역활이며, 건물을 싸는 작업을 통해 포장이 띁겨져 나가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Mimmo Rotella,  Marilyn Décollage  
 

데 꼴라쥬는 꼴라쥬의 정반대 technique 이다. 미국 문화가 유럽의 담벼락에 범람한다. 작가들이 박물관이 아닌 파리시내를 돌아다니면서 덕지덕지 붙은 poster 를 뜯어내면 밑에 또 다른 포스터가 있다. 뜯어내 canvas 에 붙여 작품으로 만든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예술이 아니고 기존에 있던 유에서 포장을 시킨다. 신사실주의는 사회적 공간의 reality 에 들어와서 대중과 같이 소통을 한다.  


Pierre Manzoni, Achrome 1958
 

만조니는 이브 클라인의 모노크롬을 보고 ‘색이 왜 필요해?’ 하고 질문하면서 chrome 앞에 a를 붙여 색과 상관이 없다는 뜻의 achrome 이란 단어를 만든다. 흰색 canvas 를 주름 잡아 접어, monochrome 을 twist 시켜 오브제를 만든다. ‘접으면 되는데 색깔에 왜 집착해?’ 과거에 그렇게 고민했던 색깔인데 만조니는 아예 색을 쓰지 않는다. 


Post Painterly Abstract 

Sam Francis, Untitled Mandala 1975
 

Sam Francis, Footprint 1960
 

1960, 70년대에 추상표현주의는 여전히 대세였고. 폴락의 그림을 승계하는 작가들의 그림을 Post Painterly Abstract 라고 부른다. 그린버그가 1964년 모마에서 차 세대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의 전시를 기획하고 새 용어 Post Painterly Abstract 를 만든다. 폴락 이후 세대와 조금 다른 새로운 스타일을 섞어서 그린다.

1960년대에는 Post Painterly Abstract, Fluxus, Pop Art, Minimalism 등 다양한 미술 운동이 전개되고 있었고, John Cage, Ono Yoko 등이 활동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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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센버그(Raugschenberg, Robert)의 추상표현주의적 팝아트(Pop Art)

[조인스 블로그] 입력 2013-10-24

그림3.jpg
라우센버그(Raugschenberg, Robert) 작, 추적자, 1963년
 
많은 팝아트 작가들이 상업적인 판화기법을 아주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는데
라우젠버그는 색상이 선명해 시각적 효과가 좋은 실크스크린 기법을 자주 이용하였다고 하죠!
바로 이 작품을 제작할 무렵부터 실크스크린기법을 자주 사용했지요.
라우센버그는 신문이나 영화 혹은 복제된 명화 등의 이미지들을 콜라주하여 
실크스크린으로 찍은 다음 그 위에 표현적인 붓질을 하였고..... 그런데.....
화면에 모아진 이미지들은 아주 상이한 원천으로부터 나온 것들이지만 
모두가 우리의 일상 생활의 경험을 환기시키는 재료들이죠
<추적자>는 60대의 민감한 사안이었던 베트남 전쟁을 암시하는 요소들을 담고 있는 작품이라 하는데....
그림 속 내용이나 의미는 한눈에 들어오지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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