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22일 월요일

복사꽃 피는 날들 , 꺼페이


복사꽃 피는 날들


책 소개
1980년대 마위안(馬原), 위화(余華), 쑤퉁(蘇童) 등과 함께 중국 문단에 대거 등장한 선봉(先鋒) 작가의 대표주자인 꺼페이(格非)가 십년 동안 준비해서 발표한 장편소설 『복사꽃 피는 날들』(원제는 인면도화(人面桃花))이 번역출간되었다. 꺼페이는 문학의 자주성과 순수성을 추구하면서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깊이 있게 다루는 동시에 광기와 폭력 등 인간의 비이성적인 측면을 파격적인 형식과 독특한 언어로 다루는 작품을 발표해왔다. 이 작품은 20세기초 신해혁명을 전후로 여주인공 류슈미(陸秀米)의 일생을 통해 무릉도원에서 비롯된 중국의 유토피아 사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탐구한 소설로, 2004년 출간과 동시에 화제가 되었고 그해 장편소설 베스트쎌러 1위를 기록했다. 대중적인 관심뿐 아니라 치밀한 서사구조와 서정적인 묘사력 등에 대한 중국 평단의 격찬에 힘입어 중국의 대표적인 문학상을 휩쓸기도 한 작품이다.

인류 보편의 꿈, 유토피아 사상에 대한 섬세하고도 찬란한 기록

『복사꽃 피는 날들』은 4부로 구성되어 있고, 각 부마다 주된 인물과 그 주된 인물이 꿈꾸는 새로운 유토피아가 등장한다. 제1부 「육손이」는 푸지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했으나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집 안팎에서 광인 취급을 받는 슈미의 아버지 ‘루칸’의 가출로 이야기를 시작하여, 혁명을 통한 유토피아를 꿈꾸던 쟝지위안의 죽음으로 끝맺는다. 루씨 집에는 집안일을 보는 남자 하인 뺘오션, 어렸을 때부터 밥 먹듯이 집을 나갔던 하녀 추이롄, 추이롄을 견제하라고 데려온 또다른 하녀 시취에, 그리고 루씨 집 딸인 슈미, 그리고 어머니가 함께 살고 있다. 루씨의 행방이 묘연한 가운데 메이쳥에서 왔다는 쟝지위안이 루씨가 쓰던 다락방을 차지한다. 어머니는 슈미나 시취에에게 쟝지위안을 삼촌이라고 부르라고 하고, 지위안은 오빠라고 부르라고 한다. 집안식구들 모두 쟝지위안의 존재를 미심쩍어하지만 어머니만은 문제될 것이 없다는 듯이 군다. 그러던 어느날 루씨 나리의 행방을 안다는 쌀가게 주인이 나타나 모두들 챵져우로 떠나는데, 가기 싫다는 슈미는 억지로 끌려가고, 뜻밖에 쟝지위안이 함께 길을 나선다. 챵져우에 도착해서 며칠을 지내지만 루씨는 나타나지 않는다. 쟝지위안과 어느 승녀에게 변을 당하는 악몽을 꾼 뒤로 슈미는 지위안을 더욱 경계하지만 우연히 그와 밤길을 걷게 되고, 육손이를 찾고 있다는 지위안의 말에, 낮에 본 낚시하는 꼽추 이야기를 해주자 쟝지위안은 그길로 먼저 길을 떠난다. 푸지로 돌아온 슈미는 이제 떠나야 한다는 쟝지위안의 다락방으로 불려 올라간다. 지위안은 슈미에게 비단함을 건네주면서 한달 내로 자신이 돌아오지 않으면 자신이 죽은 것이고, 그뒤에 찾아오는 육손이에게 이 물건을 건네주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긴다. 반달쯤 후에 슈미가 열어본 그 비단함 속에는 금매미가 담겨 있었고, 비슷한 때에 장지위안의 시체가 강물을 타고 떠내려온다.

슈미의 아버지 루칸은 푸지를 도화원으로 만들고자 집집마다 복숭아나무를 심고 마을 전체에 긴 야회 회랑을 지어 마을 사람들이 햇볕이나 비를 피할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으나 실패로 돌아갔고, 근대적 급진 혁명사상을 바탕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조고회(蜩蛄會) 활동을 하던 쟝지위안은 끝내 혁명을 성공시키지 못한 채 죽음을 맞는다.

제2부 「화쟈셔」는 슈미가 납치를 당해 도착한 화쟈셔의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이다. 슈미는 죽은 장지위안이 남긴 일기를 보고 넋을 놓는다. 남몰래 자신을 훔쳐보고 깊은 연정을 품었던 지위안의 마음을 알고 느낄수록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도 확인할 수 있게 된다. 한동안 넋을 놓고 정신을 잃고 살던 슈미는 어머니가 정해주는 대로 무심히 시집을 가기로 결심한다. 낯모르는 신랑을 따라 가마를 타고 시집으로 가던 슈미는 도중에 토비의 습격을 당하고 슈미만 남기고 일행은 모두 도망간다. 슈미를 납치한 토비 중 우두머리(넷째 나리)는 몇년 전 슈미네 집의 수리를 맡았던 이로 집에 그녀의 몸값을 요구하겠다고 하며 호수를 건너 화쟈셔로 납치해간다. 파계한 비구승 한류는 슈미에게 화쟈셔를 다스리는 여섯 두목의 사연과 그들의 토비 활동, 그들 사이의 권력관계 등에 대해 설명해준다. 첫째 나리인 왕꽌쳔의 지휘 아래 지상낙원을 세우려던 여섯 두목은 끝내 암투와 경쟁으로 서로를 치고 받아서 막내인 여섯째 나리가 결국 슈미와 혼례를 올리기로 한다. 혼례를 올리는 슈미에게 한류는 곱게 싼 금매미를 선물하고 돌아간다. 혼례날 밤 신방에 들어온 여섯째 나리는 이미 누군가에게 칼을 맞은 상태로 죽어간다. 최종적으로 슈미를 차지한 것은 열여덟살 먹은 마부로 그로 하여금 여섯 두목을 해치도록 조정한 배후의 인물이 바로 조고회의 우두머리 육손이였다. 왕꽌쳔 역시 슈미의 아버지 루칸이나, 쟝지위안과 형식은 달라도 유토피아를 꿈꾸던 이였으나 끝내 혁명에 실패하고 같은 무리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신세가 된다.

제3부에서는 아버지 루칸의 무릉도원과 쟝지위안의 혁명 유토피아, 그리고 왕꽌쳔의 화쟈셔를 모두 경험하고 탐색한 뒤에 푸지로 돌아온 주인공 슈미가 학당(학교)을 중심으로 마을에 유토피아 공동체를 건설하려는 노력을 그리고 있다. 화쟈셔를 떠나 일본에 다녀왔다는 둥, 혁명당원이라는 둥, 갖가지 소문을 몰고 슈미가 꼬맹이 아들을 데리고 푸지로 돌아온다. 돌아온 슈미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가출한 아버지와 쟝지위안이 머물던 다락방으로 올라간 한동안 두문불출하다가 마을 안 사당을 학당으로 개조한 슈미는 청년들을 모아서 훈련을 시키고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려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녀를 그냥 미치광이로 여긴다. 슈미는 전족을 금지시키고 토지개혁을 꾀하는 등 다양한 혁명사업을 벌인다. 꼬맹이를 잘 챙겨주던 빠오쳔의 아들 라오후는 어느날 밤길에서 우연히 마을에 들어온 솜 타는 이와, 그와 만나는 누군가의 흔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바로 슈미네서 부엌일을 해주는 추이롄이었다. 추이롄은 라오후의 입을 막으려고 밤에 그를 유혹한다. 어머니가 죽은 뒤 슈미는 메이쳥 청방(청말의 비밀결사 단체)의 원로 롱칭탕에게 집안의 모든 땅을 팔기로 결정하고 한평생을 루씨 집안을 위해 일해온 빠오쳔은 배신감을 느끼고, 이제 루씨 집안은 더 이상 푸지의 지주 집안이 아니게 된다. 그러던 어느날 슈미와 학당을 털러 관군이 몰려오고, 그 광경을 목격한 꼬맹이가 엄마를 구하기 위해 서둘러 학당으로 뛰어간다. 학당에 들이닥친 관군들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닥치는 대로 총을 쏴죽이는 가운데 꼬맹이도 총에 맞아 숨을 거둔다. 결국 슈미는 롱칭탕의 아들이자 관군의 우두머리인 롱수비대장에 잡힌다. 롱수비대장은 다름아니라 추이롄과 사통한 솜 타는 이였다. 슈미는 관군에 잡혀 압송되고, 추이롄은 수비대장을 따라 마을을 떠난다. 뺘오쳔과 라오후, 시취에는 꼬맹이의 시신을 수습하여 잘 묻어주고, 빠오쳔과 라오후 부자는 푸지를 떠난다. 슈미가 건설하려던, 인정받지 못한 유토피아는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집안의 몰락과 어린 아들의 죽음, 그리고 슈미 자신의 체포로 끝을 맺는다.

제4부에서 다시 푸지로 돌아온 슈미는 스스로에게 금언의 형벌을 씌우며 소박하나마 푸지에서 할 수 있는 자그마한 공동체 운동을 통해 작가가 꿈꾸는 유토피아의 단면을 보여주는 데에 성공한다. 모두가 죽거나 떠난 푸지의 루씨 집안에는 시취에만이 남아 가축을 키우며 생계를 유지하고 살아간다. 슈미는 감옥에서 풀려나 다시 푸지로 돌아온다. 슈미가 옥중에서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는 함께 학당을 꾸렸던 탄쓰의 핏줄이라는 소문이 돌지만 돌아온 슈미는 혼자 몸이다. 그녀는 말을 잃고(벙어리가 되어) 시취에의 보살핌을 받으며 뜰에 갖가지 화초를 키우면 시간을 보낸다. 애타게 찾던 육손이가 찾아와도 만나지 않고, 지나간 세월을 돌아보며 쓸쓸한 시간을 보내던 슈미는 자신의 집에 누군가 놓고 간 쌀자루를 풀어 가뭄과 메뚜기떼의 습격으로 어려움을 겪던 푸지 사람들에게 죽을 쑤어 나누어준다. 슈미는 사실 벙어리가 아니라 스스로 말을 금하는 벌을 주고 있었던 것으로, 시취에는 이를 곧 눈치챈다. 슈미는 시취에에게 화쟈셔에 가보고 싶다고 하고, 사흘 밤낮이 걸려 두 사람은 화쟈셔에 도착한다. 그러나 화쟈셔는 화재로 예전의 모습을 거의 잃었다. 그해 겨울 슈미는 아버지가 고이 간직하던 와부에 맺힌 살얼음에서 아버지가 누군가와 장기를 두는 환영을 보면서 조용히 죽어간다. 그뒤 메이쳥에 새로운 현장이 부임하는데 그는 감옥에서 슈미가 낳자마자 누군가의 손에 넘겨야 했던 그 아이다.





중국 현대문학이 마침내 도달한 새로운 경지


아버지, 연인인 쟝지위안, 그리고 왕꽌쳔이 이루고자 했던 유토피아 사상의 실현을 슈미라는 여주인공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이 작품에서 슈미는 중국의 전통적인 유토피아 사상과 근대적 혁명사상의 중간지점에 있는 존재이다. 현실의 중국이 걸어온 길은 곧 슈미의 행적에 투영된 바가 많다. 슈미는 가출한 아버지의 행적을 탐색하고 쟝지위안의 일기를 통해 그의 사상을 배우고, 화쟈셔에서 왕꽌쳥의 무릉도원에 대한 이상을 경험하지만 결코 자발적인 의지를 지닌 존재는 못되었다. ‘학당’을 통해 푸지에 공동체를 건설하고자 했으나 실패로 돌아간 데에는 자발적인 혁명당원이 아니라 시대의 물결과 거대한 풍랑에 휩쓸린 그녀의 한계가 그대로 노출된 결과로 보인다.


슈미의 운명은 외침 속에 근대 시기를 겪은 중국의 운명과 동일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전통문화를 제대로 보존하지 못한 채 근대화와 혁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던 중국의 상황과 그에 대한 작가의 반성이 표현된 대목으로 읽힌다. 그리고 슈미가 감옥에서 낳은 아들, 딴꿍따가 푸지의 신임 현장으로 부임하는 작품의 결말은, 혁명기를 거쳐 새시대의 유토피아에 대한 꿈을 새롭게 싹틔울 수 있다는 일말의 암시인 셈이다.

중국의 보르헤스 계승자로 불린다는 작가 꺼페이는 초기 소설의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색채를 한층 사실적인 묘사로 대체하고 인간 본연의 정신적 빈곤과 타락을 표현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십년 동안의 연구와 집필 기간을 거쳐 탄생한 그의 대표작 『복사꽃 피는 날들』은 탄탄한 스토리와 속도감 느껴지는 필치로 흡인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현실과 환상, 현재와 과거, 역사적 사실과 상상의 세계를 넘나드는 서사구조를 자랑하는 작품이다. 유토피아 사상, 혁명의식, 그리고 중국 근대사 등에 대한 녹록지 않은 암시와 상징이 깔려 있는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단숨에 읽어내려갈 만큼 이야기 자체로서의 재미도 쏠쏠하다. 또한 중국 고전소설적인 전통과 현대적인 형식을 동시에 갖추고 있으면서도 현란한 언어로 완성한 서정미는 중국 작가들이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인류의 꿈과 환멸이라는 보편적인 정신을 증명하기 위해 참신한 길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목차
제1부 육손이
제2부 화쟈셔
제3부 꼬맹이
제4부 말을 금하다
저자 소개

  • 꺼페이
    1964년 8월 쟝쑤성(江蘇省) 딴투현(丹徒縣)에서 태어났다. 화뚱(華東)사범대학 중문과에서 중국어문학을 전공했고 1998년 같은 학교 교수가 되었다. 2000년에 문학박사 학위를 획득하고 같은해 칭화(淸華)대학 중문과로 자리를 옮겼다. 꺼페이는 마위안(馬原), 위화(余華), 쑤퉁(蘇童)등과 함께 1980년대초 중국 문단에 등장하여 문학의 순수성, 자주성을 지향하며 문학과 역사, 문학과 현실의 관계를 돌아보는 작품을 발표해온 대표적 선봉(先鋒)작가로 평가받는다. 주요 저작으로는 『꺼페이 문집(格非文集)』 『욕망의 기치(慾望的旗幟)』 『사이런의 노랫소리(塞壬的歌聲)』 [...]

  • 김순진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 중어중문과에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 조교수로 재직중이다. 중국 여성문학과 여성문화, 대만 문학을 주로 연구하고 있으며 중국 문학작품을 국내에 번역 소개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경성지련』 『첫 번째 향로』 『거울 속에 있는 듯』(공역)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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