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9월 1일 월요일

‘생각의 시대’ 발간한 철학자 김용규 - 시·추리소설은 ‘생각의 도구’로 아주 유효”

[저자와의 대화]‘생각의 시대’ 발간한 철학자 김용규

글 정원식·사진 김정근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앞으로 필요한 건 지식 축적보다 사유능력… 시·추리소설은 ‘생각의 도구’로 아주 유효”

“지식의 종말이라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변화는 더욱 빨라질 겁니다. 우리 자신이나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제 지식을 축적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는 사유 능력입니다.”

정보혁명으로 지식은 폭증했다. 지식은 지식인과 전문가의 손에서 빠져나와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갔다. 지식이 폭증하고 유통 속도가 빨라지면서 지식의 수명은 단축됐다. 지식이 접속 가능한 데이터베이스로 변하면서 오랜 시간 고통스러운 노력을 통해 지식을 축적하는 것은 점점 무의미한 일이 되고 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지식 그 자체가 아니라 자유롭게 접속할 수 있는 지식들을 종횡으로 엮어내 창조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방법론일 것이다.


1991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대중을 위한 철학서를 써온 철학자 김용규씨(62)는 <생각의 시대>(살림)에서 “지식은 늘 새로 생겨나 자꾸 불어났지만 몇 가지 생각의 도구들에 의해 반복 재생산되어 왔다”며 앞으로의 교육은 지식 습득이 아니라 생각의 도구를 가르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보편적이고 거시적이며 합리적인 사유 능력을 제공해주었던 생각의 도구들, 그리고 이후 2500년 동안 누적된 지식을 만들어온 시원적 도구들을 찾아내야 한다”고 말했다. 왜 그리스일까. 저자는 기원전 8세기에서 5세기 사이의 그리스에 주목한다. 그 이전까지 그리스인들은 그리스 문명보다 시기적으로 훨씬 앞서는 이집트인, 고대 바빌로니아인, 수메르인들보다 전반적인 문명의 수준이 낮았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이 시기에 ‘생각의 도구들’을 발명함으로써 앞선 그 어느 문명도 도달하지 못한 이성과 합리의 시대를 열었다. 

“이집트 문명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 중국 문명은 학문보다는 종교적·도덕적 관심사에 집중했어요. 개인의 의견보다는 공동체의 화합을 중시했습니다. 반면 그리스에서는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워 논쟁에서 이기는 사람이 헤게모니를 잡는 풍토가 생겨났습니다. 이 때문에 학문적 지식이 다른 지역보다 잘 발달했습니다.”

김씨가 말하는 생각의 도구란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를 가리킨다. 모두 호메로스와 소크라테스 이전의 그리스 철학자들이 발명했다. 책에 따르면, 서양의 모든 문명은 이 다섯 가지 생각의 도구들에 의해 만들어졌다. 아이들의 인지 발달 역시 이 도구들에 의해 형성된다는 사실이 최근의 뇌신경과학, 인지과학, 교육심리학의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생각의 도구들 중에서도 으뜸은 메타포라(은유)다.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유사성을 파악함으로써 생겨나는 은유는 사고와 언어의 근간이다. 김씨는 인지과학자 레이코프의 말을 인용해 “우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관점이 되는 일상적 개념체계의 본성은 근본적으로 은유적”이라고 말했다. 예컨대 “시간은 돈이다”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이 표현에는 ‘시간은 소중하다’는 관념이 들어 있는데 이 관념은 다양한 은유적 문장들로 확장된다. ‘시간을 투자하다’ ‘시간을 아끼다’ 같은 일상적인 표현들은 모두 은유에 기반하고 있다. 김씨는 은유를 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를 낭송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흔히 시를 읽으면 감성을 기를 수 있다고 하지만 시 읽기는 단순한 감성 차원의 문제가 아닙니다. 뇌과학적 측면에서 보면 시를 암송하면 은유적 사고를 할 수 있는 뉴런 네트워크가 생깁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창의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를 수 있습니다.
아르케(원리)는 우리가 자연과 사회 현상들을 예측하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해주는 도구다. 학문은 어떤 현상의 배후에 자리 잡고 있는 원리를 찾아내는 훈련이 돼 있어야만 성립한다. 바빌로니아 사람들은 직각삼각형의 세 변 사이의 관계를 경험적인 관찰을 통해 알고 있었지만 피타고라스처럼 하나의 정리로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김씨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가추법’이다. 가추법이란 알려진 사실을 바탕으로 어떤 합리적 예측을 내놓는 것이다. 그는 가추법을 훈련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추리소설을 읽는 것이라고 말했다. 추리소설은 그 자체가 주어진 문제를 설명할 수 있는 가설과 합리적 이유를 찾아내는 과정을 담기 때문이다. 

이처럼 김씨는 생각의 도구를 연마하는 실제적인 방법으로 문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이는 세 번째 생각의 도구인 로고스(문장)와도 연관이 있다. “일반적으로 정신이 문장을 만든다고 합니다. 제 결론은 반대로 문장이 정신을 만든다는 겁니다. 한국 교육에서는 시나 추리소설을 공부 방해 요소쯤으로 생각하지만 ‘생각의 도구’라는 관점에서 보면 창조적인 사고력을 기르는 훌륭한 수단입니다.”

<글 정원식·사진 김정근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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